아르헨티나, 퍼주기식 복지 지출로 재정적자 쌓여 또 SOS

입력 2018-06-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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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또 IMF 구제금융



[ 유승호 기자 ]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의 원작은 19세기 말 이탈리아 동화 ‘아페니니산맥에서 안데스산맥까지’다. 이 동화에서 아홉 살 소년 마르코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선다. 마르코의 엄마가 돈을 벌러 간 ‘부자 나라’는 아르헨티나였다. 이 나라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이었다.

한국의 30배 가까이 되는 세계 8위의 넓은 영토와 온화한 기후 등 아르헨티나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질 것 없는 자연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오늘날 이 나라는 경제성장이 뒷걸음질치고 물가는 폭등하고 정부는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나라가 됐다.

선심성 정책으로 위기 반복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0여 차례 돈을 빌렸다.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이를 IMF에서 받은 돈으로 메우기를 반복했다. 무분별한 복지정책이 초래한 재정 부담이 ‘국가 부도 위기’를 반복하게 하는 주요 배경으로 지적된다. 정부가 세입 규모를 초과해 무리한 지출을 하다 보니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고, 이것이 누적돼 결국 갚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좌파 정부가 집권한 2003~2015년 아르헨티나 재정은 급격히 나빠졌다. 비용은 생각하지 않은 채 일단 돈을 쓰고 보자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 탓이었다. 2003년 취임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과 그 뒤를 이어 2007년 집권한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복지정책을 대폭 늘렸다. 대표적으로 △전기·휘발유·대중교통 보조금 △모든 학생에게 노트북 컴퓨터 지급 △집세 보조금 △연금 지급액 확대 등이었다.

언뜻 보기엔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 같지만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경제 성장의 잠재력을 확보하지 않은 채 지출을 늘리다 보니 재정적자가 불어났다.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는 2009년 1.5%에서 2015년 5.4%로 증가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복지에 쓸 재정이 모자라자 돈을 새로 찍어냈다. 물가 급등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은 2016년 한때 40%가 넘었다. 지금도 25%에 이른다.

개혁에 반발하는 국민들

2015년 말 취임한 중도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한 개혁에 나섰다. 전기와 에너지산업에 주던 보조금을 줄이고 연금 지급액 축소를 추진했다. 개혁정책이 성과를 내면서 2016년 마이너스였던 아르헨티나 경제성장률은 2017년 플러스로 돌아섰고 재정적자도 감소했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인 만큼 복지 혜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각종 보조금을 줄인 탓에 전기요금, 대중교통요금은 큰 폭으로 뛰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 돈을 빌린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커졌다. 마크리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론 반발에 마크리 대통령은 ‘속도 조절’에 나섰다. 다시 재정지출을 늘렸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렸다.

이번엔 외국인 투자자가 아르헨티나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크리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믿고 아르헨티나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가 개혁이 후퇴할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돈을 빼낸 것이다. 외국인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40%까지 올렸다. 하지만 자금 이탈은 지속됐고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뿌리 깊은 포퓰리즘의 상처

아르헨티나에서 포퓰리즘 정책의 역사는 길다. 1940~1950년대 집권한 후안 페론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에바 페론은 주요 산업 국유화, 노동자 급여 인상, 복지 확대 등의 정책을 펼쳤다. 이런 정책은 노동자와 서민층의 지지를 받았지만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급여 인상과 경제성장 없는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최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아르헨티나 주요 도시에선 IMF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반발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복지 등 재정지출을 줄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 축소 등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지 않고선 아르헨티나 경제는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개혁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의 저항은 한 번 시작된 선심성 복지정책을 끝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르헨티나의 점진적 개혁이 한계에 부딪쳤다”며 “더욱 빠른 경제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NIE 포인트

아르헨티나가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이유를 정리해보자. 정부가 무분별한 복지정책을 시행한다면 국가 경제는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 토론해보자.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등이 지속 가능하려면 어떤 조건이 뒷받침돼야 할지도 생각해보자.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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