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보호주의에 다국적 기업 '흔들'… 글로벌 공급망 위기

입력 2018-06-19 17:45  

글로벌 FDI 23% 감소…공장 신설도 14% 줄어들어
민족주의 바람에 내수 기업 활황…세계 교역량은 감소
새 통상 패러다임 대두될 수도…선제적인 전략 요구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지구촌 강타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 정책이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대(對)이란 제재와 보호 무역에 강경한 자세를 보인 데 이어 중국 제품에 관세를 대폭 올리면서 통상전쟁을 점화시켰다. 중국도 맞보복으로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양국의 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과 멕시코 캐나다 인도도 보복 관세를 서두르고 있다. 자국우선주의는 다국적 기업을 흔들고 글로벌 투자를 줄이고 있다. 기업들의 전략도 과감하게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다.

뮈리엘 페니코 프랑스 노동부 장관이 17일 긴급 기자회견을 하면서 미국의 다국적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을 공격했다. 그는 2015년 프랑스 기업 알스톰을 인수한 GE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서 당초 1000명을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분개했다. 페니코 장관은 그러면서 올해 말까지 고용하지 못하면 일자리 한 개당 5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돼 있는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경고했다. 벌금 총액은 최대 3400만유로 규모다.

친기업을 내걸던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일자리를 중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무엇보다 외자 기업인 GE에 강한 철퇴를 내린 것이 충격적이다. 트럼프는 마크롱에게 “무역문제에서 EU가 중국보다 한층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그가 기업 규제와 압박을 통해 무역 마찰에 합세한 것처럼 보인다. 비단 마크롱뿐만 아니다.

인도도 18일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산 아몬드와 호두, 사과, 일부 화학제품, 금속제품 등 30개 품목에 관세를 부과했다.

독일과 캐나다도 관세 폭탄 외에 더 강력한 통상 수단을 확보하느라 안간힘이다. 미국과 이미 통상전쟁에 들어간 중국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애쓴다.


정치에 개입, 경제는 고립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그의 미국우선주의와 고립정책은 미국사에서 흔히 봐온 ‘미국주의’와 성격이 다르다. 미국이 세계 최고 강대국이 되고 나서 경찰 국가를 수행하는 상황에서 전환된 정책이다. 전통적인 미국 고립정책은 자국의 국익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 군사 측면에선 개입하지 않았다. 경제 분야는 개입을 추구하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신고립주의는 정치와 군사 분야 중에서 미국의 이익에 필요한 사안에는 개입하는 반면 경제 분야는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고립을 채택하고 있다.

국가 이익의 재편이다. 그 이익은 물론 유권자의 표심과 연결돼 있다. 미국의 국가 주권과 국가 이익을 워싱턴 정치인과 월가의 경제인들이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했다는 강력한 불만이 표심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 대서양에서 태평양 국가 중심으로 이익이 이동하는 것도,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도 그런 맥락과 닿아 있다.

미국 내 투자도 39% 줄어

이런 상황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년 전부터 뚜렷하게 나타난 변화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해외 직접투자(FDI)는 전년 대비 23%나 줄었다. 공장 신설 투자도 14%나 감소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비중으로 따지면 10년 전의 절반이다. 물론 아시아나 남미를 제외한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 내 투자는 전년에 비해 무려 39%나 줄었다. 올해 1월 기준 공장 신설도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그만큼 수익이 줄어서다.

이미 FDI에 집중했던 기업의 수익률은 계속 줄고 있다(표1). 값싼 노동임금과 규모의 경제 등은 철 지난 옛 이야기다. 현지 주민들은 걸핏하면 애국과 민족을 외친다. 외국 정부도 감세보다 해외 기업의 세금을 올리려 한다. 이들 다국적 기업의 어드밴티지로 작용했던 글로벌 가치사슬(GVC)도 먹혀들지 않는다. 글로벌 민족주의와 보호주의가 낳은 그림이다. 덩달아 세계 교역량도 감소하고 있다.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교역량은 2월에 0.7% 감소한 데 이어 3월에도 1.2% 줄었다. 2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4년 만에 처음이다.

이에 비해 오히려 각국의 내수 기업들은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세계 500대 기업을 내수 기반의 지역 기업과 다국적 기업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다국적 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12%였지만 내수 기업들은 30%의 증가율을 보였다. 기업 수익도 다국적 기업은 11%에 불과했지만 내수 기업의 수익은 12%로 1%포인트 높았다.

주민 감정 등이 내수 기업에 힘실어

무엇보다 내수 기업 성장에는 국민의 감성이 자리 잡고 있다. 월마트는 올해 4월 영국 유통기업 세인스버리에 자사가 운영하던 마스다를 매각했다. 세인스버리는 전통적인 식품유통 기업이다. 월마트는 한때 세인스버리를 인수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영국인들에게서 세인스버리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다. 월마트는 영국 시장 진출에 한계를 느꼈다. 오히려 마스다를 매각하고 세인스버리의 조정 아래 영국 시장에서 지분을 차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부 규제도 내수 기업 성장에 한몫하고 있다. 브라질에선 브라데스코 등 국내 은행이 글로벌 금융회사보다 실적이 좋다. 각종 규제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4G 스마트폰에서 국산 콘텐츠 내용을 20%에서 30%로 올렸다. 다국적 기업 투자에 규제를 하는 국가도 아직 많다.

다국적 기업 일자리 창출 관건

복지 국가 스웨덴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에서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 거세게 반대했다. 브렉시트가 스웨덴의 일자리를 8000개나 빼앗기 때문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프랑스가 GE에 벌금을 매기는 것도 결국 일자리요, 트럼프가 그토록 외치는 것도 일자리다. 각국 정부가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는 데는 바로 일자리 창출이 주요 목표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일자리가 본격 나오지 않은 것도 과제다.

한국 기업들은 GVC에 많이 노출돼 있다. 이 같은 통상전쟁과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 감소는 우리 기업들에 결코 좋지 않은 소식이다. GVC가 줄어들면서 그만큼 일감이 감소하고 일자리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 국익의 전환이 정치외교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대체할 새로운 통상 패러다임이 대두될 수도 있다. 변화하는 무역환경에 선제적이고 기민한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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