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혁명의 정신을 기려 세운 에펠탑 같은
자주독립·번영 자랑할 상징물 세웠으면
강철희 <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한국건축가협회 회장 >
“혹시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인 거 아세요?” 아들 녀석이 불쑥 던진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2019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 대대적인 기념사업이 진행돼야 마땅할 텐데 뉴스에서도 관련 소식을 본 기억이 없어 찾아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수년 전부터 천도교를 비롯해 여러 종교단체가 나서서 기념사업의 필요성을 호소했으나 큰 반향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동안 나라 사정이 말이 아니었으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나마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나름의 사업을 하고 있는 듯해 고마운 마음이었다. 서울은 여러 기념사업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태화관 터에 기념광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적으로는 이렇다 할 준비가 눈에 띄지 않는다.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에야 겨우 대통령 직속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꾸려진 모양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아직 나온 것이 없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같은 해이다 보니 건국절 논란에 엮여 사업 예산이 삭감되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을 어느 시점에 두느냐는 찬반이 팽팽한 난제 중 난제다. 하지만 역사를 보는 시각의 차이가 빚은 지금의 논쟁과 명백한 역사적 사실인 3·1운동 100주년은 냉정하게 분리해서 다뤄야 할 것이다.
100주년 기념사업에는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건축인의 한 사람으로서는 이처럼 역사적인 순간의 상징성에 걸맞은 기념조형물을 꼭 하나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에는 아직 근대 이후 국민의 힘을 모아 세운 국가적 상징 조형물이라 할 만한 것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광화문의 이순신상과 세종대왕상은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분들의 동상이지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의지를 담은 독립문은 일제 강점기 전에 세워진 것이니 해방 이후 우리가 지켜낸 자주독립과 번영의 상징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모르는 이는 없으나, 그 탑이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1789년 자유·평등·박애를 기치로 수백 년의 왕정을 종식시켰던 프랑스 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100년 뒤 후손들은 세계 최고의 철탑이라는 발전과 번영의 상징으로 기린 것이다.
혹자는 조형물로 과거를 기념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하더라도 인간에게 물리적 공간과 경험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또 기념조형물은 수익을 내기 위해 짓는 초고층 건물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경제적 논리를 넘어 온전히 정신적인 가치를 보이기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야말로 우리를 동물과 구분 짓는 인간성의 본질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1919년 탑골공원에서부터 자유와 자주를 외치며 일으킨 우리의 변하지 않는 정신, 그리고 그 국가혼을 동력 삼아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기까지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이뤄낸 우리의 성취를 만방에 자랑할 수 있는 국가적 상징을 꼭 세웠으면 한다. 그 규모와 모양, 내용 모두 2019년 대한민국의 국격에 걸맞은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번만큼은 제발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일하지 않기를 바란다. 불과 9개월 남은 내년 3·1절까지는 설계를 하는 것도 무리다. 최근 유례없는 국난과 이런저런 논란으로 100주년을 미리 챙기지 못한 것도 우리의 현실이고 역사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차라리 내년을 새로운 국가적 상징 조형물 사업의 원년으로 삼으면 어떨까. 차근차근 국민의 의견을 모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서 시작해 한 푼 두 푼 국민의 성금으로 추진한다고 생각하면 몇 년 안에 후딱 해치울 일도 아니다. 아예 3·1절 100주년에 시작해 광복절 100주년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어떨까. 100년의 상징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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