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정치논리에... 공기업 직원 자녀들이 '왕따'가 됐다

입력 2018-06-21 11:37   수정 2018-10-25 12:17



(나주=성수영 경제부 기자) 한국지역난방공사(한난) 나주지사 직원들은 식사하러 갈 때 회사 조끼를 벗어야 합니다. 나주혁신도시 주민들이 한난 직원들을 바라보는 표정이 곱지 않기 때문이지요. 식당에선 주변 손님들에게 욕설을 듣는 일이 빈번하다네요. 직원 가족들은 ‘왕따’를 당하기도 한답니다. 자녀들은 학교에서, 배우자는 반상회 등 지역사회에서 가족 중에 한난 직원이 있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깁니다. 그래도 ‘들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네요.

왜 이들은 따돌림을 당하고 있을까요? 한난이 나주혁신도시에 지은 SRF(고형폐기물연료) 발전소 때문입니다. 발전소는 공사가 사업비 2700억원을 들여 2014년 착공해 지난 9월 준공할 예정이었고, 시험가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쓰레기 발전소’라며 강력 반발했죠. 수 천억원을 들여 만든 발전소는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한난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매달 수십억원을 대체 시설 가동비로 지출했습니다. 주민 요구대로 SRF발전소를 폐쇄하고 대신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세우면 2000억원이 들지요.

한난 측은 발전소가 정화 시설을 설치해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 배출이 전무하고, 이미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했다고 항변합니다. SRF로 인한 악취도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물론 발전소 바로 옆에서도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요. 주민 반대가 심해지자 한난은 “주민들이 환경 조사 회사를 선정해 평가하면 수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대주고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했지만 이조차 거부당했다고 합니다.

그 배경에는 나주혁신도시 주민들의 ‘악취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으로 한국전력을 비롯한 공공기관은 나주시 빛가람동으로 이전해야 했습니다. 공공기관 직원들도 따라갔지요. 직원들은 이를 ‘강제 이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빛가람동 주변에는 나환자촌인 호혜원에서 운영하는 축사 등 악취를 유발하는 요인이 수 십개 넘게 산적해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때마다 빛가람동 주민들은 악취에 시달렸지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악취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네요.

특정 정치세력은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트라우마를 가진 주민들에게 “SRF는 쓰레기 발전소고, 들어오면 악취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한 거지요. 주민들은 축사 등에서 나오는 악취도 SRF 발전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발전소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일정량 이상의 연료가 필요한데, 한난은 이를 위해 광주시 등에서 고형폐기물연료를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이 점도 좋은 공격 대상이 됐지요. 왜 다른 도시 쓰레기까지 가져와 태워야 하냐면서요.

나주시도 같은 장단에 맞춰 춤을 췄습니다. 작년부터 채 1년이 되지 않는 기간동안 SRF발전소에 대한 나주시 입장은 다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처음 SRF발전소 건설에 허가를 내줬던 나주시가 주민 반발이 심해지면 반대했다가, 배상 책임 문제가 불거지면 찬성하기를 반복한 거지요. 공문을 발송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광주시 쓰레기 수입 반대 입장을 공문을 통해 명확히 밝혔다”고 하거나, 홈페이지에 가동 승인 공고를 올린 뒤 갑자기 내리는 등 편법적인 수단도 동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나주시와 한난이 벌인 소송전에서 법원은 한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빛가람동은 나주시 선거구 중 최대 규모입니다. 이 같은 전략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나주시장은 재선에 성공했고, 시의원 선거에서는 SRF 반대를 내세운 인사들이 다수 당선됐습니다.

선거가 끝난 지금 나주시는 어느새 가동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번에 재선된 강인규 나주 시장은 본인이 직접 피켓을 들고 발전소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입장을 바꿔 “일부 환경단체 등이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무책임한 주장을 하고 있다”며 발전소 반대측을 맹비난했지요. 선거가 임박하자 “문재인 정부다운 사회갈등 해소 방식을 택하겠다”며 공론화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죠. 지역 인사들은 시장이 적극적으로 주민을 설득해 가동을 허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정치 논리에 따른 ‘해프닝’으로 끝날 거란 예상이지요.

이 해프닝으로 한난은 수 백억원의 손해를 봤습니다. 원자력발전소 공론화위로 원전 건설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손실 1200억원을 떠안은 한국수력원자력처럼, 한난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주시민들의 혈세로 메꿔야 하겠지요.

한난 나주지사는 직원들 사이에서 ‘최악의 기피지사’가 됐습니다. 직원들과 가족들은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요. 직원 A씨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A씨의 아내는 주변에 남편이 한난 직원이라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그러다가 반 강제적으로 SRF발전소 반대 집회에 참여하게 됐지요. 발전소 안에서 일하던 A씨는 아내가 밖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나주에 집까지 샀던 A씨는 “이런 상황을 도저히 버틸 수 없다”며 올 하반기에 인사이동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나주시 SRF발전소를 둘러싼 갈등은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과 주민 수용성이 얽힌 복잡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졸지에 따돌림을 당하게 된 직원 가족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선동한 이들이 없었다면 훨씬 원만하게 결론이 났을 겁니다. 수많은 이들의 생활과 혈세를 담보로 ‘뱃지’를 다신 분들,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끝) /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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