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대출 풀리고 거래 자유로워져…매매가 향방 '촉각'
서울 강북 최고가 아파트인 ‘경희궁자이’가 준공 1년 반 만에 등기 절차를 진행한다. 사람으로 치면 뒤늦게 출생신고를 하는 셈이다. 이 아파트는 그동안 미등기 상태였던 까닭에 매매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등기 이후부터 담보대출이 가능해진다. 매수인들의 자금조달에 숨통이 트이는 만큼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클 전망이다.
◆‘지각등기’ 왜?
21일 교남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돈의문1구역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은 오는 26일 관리처분계획변경을 위한 총회를 열고 아파트와 상가 등의 대지에 대한 처분계획을 확정한다. 이를 토대로 새로 지은 아파트에 대한 소유권보존등기와 이전고시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보존등기가 완료돼야 조합원과 일반분양자들이 개인별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진행할 수 있다.
등기가 나오는 데까지는 총회 이후 한 달 반가량이 걸릴 것으로 조합은 예상했다. 이르면 8월 중순께부터 등기소에서 경희궁자이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입주를 마친 지 1년 반이 되는 시점이다.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재개발 사업을 통해 지은 아파트의 경우 통상 등기까지 1년 안팎이 소요된다. 택지지구 아파트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 행정 상의 변수가 많아서다. 지난해 2월 입주한 경희궁자이는 당초 올봄께 등기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경찰박물관 이전 갈등 등을 이유로 늦어졌다.
조합은 재개발을 진행할 때 경찰박물관을 포함한 새문안로 주변 부지를 서울시에 기부채납 하고 용적률 상향 혜택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1단지와 행촌동 부근에 새 경찰박물관을 지을 수 있도록 땅을 마련해줬다. 하지만 경찰이 이전 부지 외에도 건물 신축까지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조합 입장에서는 박물관 이전 때문에 사업이 완료되지 못하면 등기 문제로 아파트 소유자들의 재산권 행사에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조합과 경찰이 건물 신축 비용을 분담하는 것으로 협상이 마무리됐다.
임대아파트동(棟)에 대한 취득세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는 게 조합의 주장이다. 종로구청에서 이 단지와 함께 지어진 임대아파트에 대한 취득세 27억원을 뒤늦게 조합에 부과했기 때문이다. 통상 재개발 단지에 들어서는 임대아파트는 서울시나 서울도시주택공사에서 일괄매입한다. 돈의문1구역조합의 경우 496가구 규모의 임대아파트를 지어 서울시에 904억원에 판 뒤 이를 사업비에 충당했다. 하지만 관리처분계획에서 임대아파트가 체비지로 인가되지 않았던 게 문제가 됐다. 원시취득 당시 취득세 면제가 되는 요건을 갖추려면 해당 임대아파트가 체비지로 분류됐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합 관계자는 “없었던 취득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다 등기 절차를 밟는 데 시간이 지체됐다”면서 “사업이 끝난 뒤엔 재원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취득세를 납부한 뒤 별도의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값 ‘뇌관’ 될까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일단락돼 늦어도 추석 전에는 이전고시가 날 것으로 조합은 예상했다. 하지만 현지 중개업소들은 빨라도 연말이나 내년 초순께는 돼야 실질적인 거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교남동 J공인 관계자는 “법무사무소 두 곳에서 등기를 진행하지만 2400여 가구나 되는 대단지다 보니 소유권이전등기를 모두 마치려면 시일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잔금일부터 2년이 지나야 양도소득세가 줄어드는 만큼 본격적인 매물 출하는 내년 봄에나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등기 이후 집값 상승폭이 종전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미등기 상태였던 탓에 매수인의 담보대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G공인 관계자는 “매수를 문의하다 대출이 안 나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발길을 돌렸던 이들이 부지기수”라면서 “그동안 1억~2억은 저평가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반분양분의 경우엔 거래 과정도 복잡하다. 당장 매매를 하더라도 향후 보존등기가 나는 시점에 수분양자 명의로 등기를 했다가 다시 매수자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해야 한다. 미등기 전매를 피하기 위해서다. 잔금을 무기한 미루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우려도 크다. 등기 전에 세입자를 들이는 경우라면 서류상 소유자는 기존 수분양자이기 때문에 임대차계약 과정 또한 번거로워진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매수자를 구하기 힘들어 통상 등기 전 재개발 아파트는 할인 거래되는 경향이 크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들의 얘기다. 일반분양을 받은 소유주들의 입장에선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큰 셈이다. 투자로 접근했다가 팔지 못해 입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등기 이후론 이 같은 문제가 없어지기 때문에 집값이 탄력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파트는 지난해 입주를 전후로 강북에서 처음으로 3.3㎡당 매매가격이 3000만원을 넘어섰다. 현재는 3.3㎡당 4000만원을 웃돈다. 전용면적 84㎡ 입주권은 지난 3월 13억9500만원에 손바뀜해 강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일반분양가와 비교하면 5억~6억원가량 올랐다. 광화문 등 도심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일대에서 앞으로도 이 같은 대단지 신축 아파트가 나오기 어려워서 희소성이 부각됐다. 등기 이후로 강북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장밋빛 해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전국적인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이고 있는 데다 매물이 한꺼번에 늘어날 경우 경쟁적인 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어서다. W공인 관계자는 “4월 이후로는 한 건도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시세 워낙 높아 거품이란 시각이 있는 데다 학군과 학원 등에 약점이 있어 수요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상식 상경공인 대표는 “매수 문의가 종종 있지만 사려는 이들은 거의 없다”면서 “전용 84㎡ 주택형이 14억원 이상을 호가하고 있는데 일반분양분이 1000가구를 넘는 만큼 등기 이후 매물이 집중되면 다소 조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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