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의 거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순천향병원에서 별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40년 이상 정치가로 활동하며 제 11대, 31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으로 불리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영원한 2인자’로서 대한민국 정치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고, 같은 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주 업적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도움을 주었고, 경부고속도로 개통에도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한다. 김 전 총리는 그러나 박정희 정부 시절 대통령과 그 친위그룹의 견제에 시달렸다. 박 전 대통령은 “(김종필이) 자꾸 욕심을 낸다”며 못마땅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리는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DJP(DJ+JP)연합으로 당시 김대중 총재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충청권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그는 “내각제를 이루기 위해 원내 동조세력을 규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대중 대통령을 후보로 내세우는 조건으로 내각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회고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 전 총리를 속인 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그에 따라붙는 여러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영욕과 부침을 거듭해왔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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