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대교는 1934년 건설된 한국 최초의 도개교(跳開橋)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들리는 진풍경으로 유명했다. 몇 년 전 47년 만에 도개 기능을 복원하면서 다시 한 번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다.
영도대교는 6·25전쟁이 남긴 상처와 애환의 상징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잃어버린 부모형제와 자식을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라는 노래비가 남아 실향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묵묵히 들려주고 있다.
필자와의 사연도 깊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유골을 그곳에 뿌렸다. 마음이 무겁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찾는 이유다.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와의 이별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만큼 슬펐다. 처음 겪는 인생의 시련이었기에 한동안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가장(家長)의 부재는 가난이라는 현실로 다가왔다. 생계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영도의 한 보세창고에 취직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기대와 달리 힘들고 단순한 일과의 반복이었다. 고졸 출신이었기에 잔심부름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세관에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영도대교가 들리는 시간과 겹쳤다. 자주 있는 일이라 별 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리다가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가난을 핑계로 제대로 꿈도 가져보지 못한 채 포기했던 나약한 내 모습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왔다. 더 이상 목표 없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막상 시작하니 공부도 힘들었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겹치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선택과 노력이 내 삶을 완전히 바꾼 것 같다. 새로운 길이 낯설다고 가지 않았거나 힘들다고 멈춰 섰다면 아마도 큰 후회를 남겼을 것이다.
인생이 늘 평탄할 수만은 없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좌절의 시기는 있기 마련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반전의 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는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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