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정부 입김' 원천 봉쇄한 日·유럽… 기업에 영향력 키우는 국민연금

입력 2018-06-24 17:53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 논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앞두고 '연금사회주의' 경고음

연기금 독립성 보장한 선진국
日, 의결권 통째로 민간에 위탁
네덜란드, 민간 자회사가 운용
스웨덴은 여러개 펀드로 분할
기금 간 '수익률 경쟁' 유도

정부 통제 아래 있는 국민연금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
지배구조 개편없이 주주권 행사땐
기업 '경영 개입' 본격화 될 우려



[ 유창재 기자 ] ▶마켓인사이트 6월24일 오후 3시45분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다음달 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 주주권 행사 지침) 도입 안건을 의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되면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에 의결권 행사를 넘어 경영진 면담, 사외이사 후보 추천, 주주대표 소송 등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걸림돌이 되는 ‘5% 공시룰’을 완화해주기로 하는 등 정부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사전 정지 작업에 나서는 모양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기업 개입 신호탄”

6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다. 국민연금법상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책임자는 복지부 장관이다. 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다.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도 복지부 장관과 이사장이 청와대의 검증을 거쳐 선임한다. 현 국민연금 지배구조는 정부의 정책 목표와 정치 논리에 좌우되는 취약한 구조다. 국민연금이 민간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위험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자칫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복지부는 “해외 연기금은 이미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스튜어드십코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 연기금은 대부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선진 연기금

네덜란드의 공무원·교직원 퇴직연금인 ABP는 APG라는 주식회사 형태의 민간 자회사를 통해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ABP 자체도 1996년 민영화됐다. 노르웨이 연금인 GPFG는 노르웨이 중앙은행(NB)의 자산운용 조직인 NBIM이 위탁 운영한다. NBIM은 해외에만 투자하기 때문에 연금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스웨덴 공적연금인 AP의 경우 AP1~AP4, AP6 등으로 기금을 잘게 쪼개 굴리고 있다. 각 기금은 상호 경쟁하며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캐나다 연금을 운용하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정부 정책 목표와 관계없이 오로지 연금 가입자의 이익만을 위해 투자한다”는 CPPIB법(1997년 제정)을 통해 독립성을 부여받았다. CPPIB 이사회는 연방정부와 각 지방정부가 추천하는 12명의 이사로 구성되는데 모두 투자 및 경제 전문가다. 이들 이사가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한다. CPPIB법을 수정하는 것은 캐나다 헌법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렵게 설계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연금 지배구조부터 바꿔야

국민연금과 비슷한 지배구조 형태인 해외 연금으로는 일본 공적연금(GPIF)이 있다. 후생노동성의 관리·감독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GPIF는 주식 운용과 함께 의결권 등 주주권 행사 일체를 위탁운용사에 넘긴다.

일본 정부도 2016년 GPIF의 주식 직접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부의 경영 간섭과 시장 왜곡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법 개정이 무산됐다. 당시 일본 정부는 “직접 투자는 닛케이지수를 단순 추종하는 패시브 방식으로만 하고 의결권 행사는 신탁은행, 의결권 자문사 등 외부에 위탁한다”는 절충안까지 내놨지만 이마저 여론 반발에 막혀 포기했다. GPIF도 2014년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지만, 위탁운용사가 지침을 따르는지 점검하는 역할만 한다.

국민연금도 단기적으로는 GPIF처럼 주주권 행사를 위탁운용사에 맡기고, 장기적으로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교수)은 “현 지배구조 아래에서 국민연금이 직접 주주권을 행사하면 연금 사회주의 논란으로 스튜어드십코드의 순기능이 오인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시장 영향력이 너무 큰 게 문제”라며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의결권을 포함한 주식 운용을 모두 위탁운용사에 넘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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