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신으로 전해진 미국 시애틀 시(市)의회 결정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인사들 중 몇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나흘 뒤 4년 임기를 시작하는 4016명 지역 일꾼들을 위해 되새겨 보고 싶다.
시애틀 시의회는 노숙자 복지기금으로 대기업 근로자 1명당 연간 275달러를 ‘인두세’로 걷겠다는 시정부 징세안을 부결시켰다. 시 당국은 ‘영업이익 2000만달러 초과 기업’이라는 부과 기준도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아마존과 스타벅스를 겨냥한 것이었다. 대개의 세금이 그렇듯, 이 세금도 명분은 그럴듯했다. “대기업 중심 개발로 도심 주거비가 급상승해 노숙자가 많이 생긴 만큼 결자해지하라”, “스타벅스와 아마존이 시애틀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컸으니 도시에 기여하라”는 여론에 편승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의회는 냉철했다. “이런 세금은 도시 성장을 저해한다”는 게 부결 사유였다.
시애틀 의회가 인두세 막은 사연
지역의회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 시장 도지사 군수가 이해집단에 휘둘리는 것은 선거제의 치명적 약점이다. 포퓰리즘 행정에서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감시자가 지역의회다. 시애틀 의회는 8년 전 아마존이 시애틀에 자리 잡으면서 뉴욕보다 잘살게 됐다고 본 것 같다. 도심 빌딩 33곳에 분산된 아마존 본사가 시애틀을 ‘장악’한 게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고 관광객까지 불러들인 부(富)의 창출자라고 본 것이다. 시의회가 밀려든 ‘피켓 부대’의 법 제정 요구에 반대하는 용기를 발휘한 배경일 것이다.
우리 지방의회가 무용론·폐기론을 이겨내려면 이런 판단을 본받아야 한다. 물론 지자체 살림에 대한 엄격한 감시도 중요한 기본 업무다. 지방 예산은 올 한 해에만 310조1612억원, 중앙정부 예산의 72%에 달한다. 동결을 가정해도 임기 4년간 1240조원을 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의 파생 가치’라는 개념으로 유권자 1표당 2891만원이라고 계산한 막대한 금액이다.
어느덧 일곱 번째 지방선거였지만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서울시의회를 보면 110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102석을 휩쓸었다. 3연임하는 시장도 같은 당 소속이다. 중앙권력까지 ‘한집안’이다. 전국 곳곳이 이런 판에 견제와 감시, 균형이 가능할까. 이런 판세가 지방권력을 무소불위로 만들까 겁난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자가 취임도 하기 전에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카드를 먼저 꺼낸 것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6조원짜리 이 사업을 부산시 의회는 어떻게 볼까 .
310조 지방예산… '지역경쟁' 열릴까
서울과 부산 정도면 중앙정부도 쉽게 손대기 어려운 공룡이다. 인구 2만~3만 명의 군(郡)도 ‘분권, 자치’를 내세우며 자기 길을 고집한다. 우리는 법적으로 ‘지자체 파산’이 아예 불가능해 재정자립도가 최악인 곳조차 정부의 개입과 지도에 한계가 있다. 이런 와중에 자치 행정까지 ‘여의도식 정치’에 물들면 지역 정치꾼들은 살아남을지 몰라도 지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시청·구청·군청이 곧 정부일 정도로 국가권력은 지방으로 계속 이전돼 왔다. 각종 인허가와 현장 규제가 이뤄지고, 기업의 유치 여부를 결판내는 것도 지방행정이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 간에 경중도, 우선순위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 분권’을 강조한 정부이니 지방권력은 더 세질 것이다. 그럴수록 지방의회의 견제, 감시 책무도 커진다. 지방예산이 지역경쟁에서 성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부족하기만 할 것이다. 이것 역시 많은 부분 지방의회에 달렸다. 지방 엘리트들이 토호가 아니라 지역 경쟁을 주도하는 세일즈맨이 되길 바란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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