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김기사도 뛰어들다… 후끈 달아오른 '공유오피스'

입력 2018-06-29 18:00  

커버스토리 - 공유오피스 '붐'

여성·블록체인 기업 전용 오피스도 등장…"입주사 간 교류 매력"

"벤처 사업 접거나 확장할 때
공유오피스가 여러모로 유리"
책상 하나 月 40만원에도 몰려
경영 멘토 서비스도 지원받아

금융·패션 등 대기업 잇단 진출



[ 임현우 기자 ]
하이트진로, 서브원, 신세계인터내셔날, 한화생명, 현대카드, 태평양물산….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 기업이 최근 공통적으로 뛰어든 신사업이 있다. 멋진 사무실을 갖춰놓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포함한 여러 기업에 업무공간을 빌려주는 ‘공유오피스’ 사업이다.

얼마 전까지 미국계 위워크, 토종업체 패스트파이브 등 몇몇 전문업체 중심이던 공유오피스 시장에 후발주자가 대거 진출하면서 경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600억원 규모였던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은 연평균 63% 커져 2022년 77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3년 전 약 5만㎡에 그쳤던 서울의 공유오피스 면적은 세 배 가까이로 넓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다른 스타트업을 위한 공유오피스를 세우기도 한다.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카카오에 매각해 큰돈을 번 공동창업자 신명진·박종환·김원태 씨는 다음달 경기 성남시 판교에 4000㎡ 규모의 공유오피스 워크앤올 1호점을 낸다. 유명 인터넷 패션몰 ‘무신사’는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에 7200㎡ 넓이의 무신사스튜디오를 열었다.

최근 공유오피스 시장에서 주목되는 흐름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금융, 패션, 식음료 업종 등의 다양한 기업이 잇따라 진출하면서 브랜드 수가 급증하고 있다. 호텔급 인테리어를 갖추는가 하면 ‘여성 전용’(빌딩블럭스) ‘블록체인업체 전용’(해시드 라운지) 공유오피스가 등장하는 등 차별화 전략이 등장하고 있다. 주요 공유오피스 업체들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외국계 기업의 한국지사 등을 입주사로 맞기 위해 마케팅 전선을 확대하는 점도 눈에 띈다.

토종 공유오피스업체 패스트파이브의 김대일 대표는 “경제활동 세대가 바뀌고 기업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공유오피스의 고속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빌려쓰는 사무실’ 장단점은

공유오피스는 보증금 없이 월 이용료만 내면 된다. 회의실, 라운지, 휴식공간 등 부대시설까지 고급화하는 추세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여러 입주회사와 교류할 수 있는 것도 매력으로 꼽힌다. 주요 공유오피스에서는 입주사끼리 공동 마케팅을 기획하거나 저녁파티를 통해 인맥을 쌓아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공유오피스 이용료는 마냥 저렴하다고 보긴 어렵다. 위워크, 패스트파이브 같은 유명 브랜드는 책상 하나 쓰려고 월 30만~40만원 안팎을 내야 한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기간과 규모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장점으로 꼽힌다.

이창준 쿠시먼웨이크필드코리아 상무는 “스타트업은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데다 사업이 잘되면 인력과 사무실을 갑자기 늘려야 하고 반대로 금방 접어야 할 수도 있다”며 “그런 만큼 공유오피스가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요즘은 근무환경이 별로면 유능한 인재들이 아예 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공유오피스는 깔끔한 라운지에서 맥주, 커피 등을 무료로 마시고 샤워실, 수면실도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에 문을 연 빌딩블럭스는 여성 창업자에 특화해 보안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수유실, 키즈존 등을 갖췄다.

공유오피스업체는 단순한 ‘공간 임대’를 넘어 ‘경영 멘토’ 역할까지 추가하며 부대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위워크는 지난달 ‘위워크 랩스’라는 경영지원 서비스를 선보였다. 스타트업 전문가들이 건물에 상주하면서 직원 채용, 전략 수립, 마케팅, 회계 등의 지식을 전수한다.

‘김기사’ 공동창업자들이 설립한 워크앤올은 유망 스타트업을 선발해 사무 공간을 무료 제공하는 것은 물론 초기 투자도 주선해줄 계획이다. 김태호 알투코리아 상무는 “후발주자가 늘면서 공유오피스 서비스에서도 차별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뛰어드는 이유는

국내에 공유오피스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3~4년 전부터다. 스타트업 패스트트랙아시아가 패스트파이브 1호점을 열었고, 이듬해 미국 위워크가 한국에 첫 번째 지점을 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육성 전문업체) 스파크랩,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루트임팩트, 아산나눔재단 등이 공유오피스를 열어 투자 대상 기업을 집결시켰다. 네덜란드 스페이시스, 홍콩 TEC 등 해외 공유오피스가 상륙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카드, 한화생명, 서브원, 신세계인터내셔날, 태평양물산 등 공유오피스와 무관했던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잇따라 진출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스타트업 생태계와 ‘연결고리’를 형성하려는 시도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소주·맥주사업 정체로 고민이 많은 하이트진로는 벤처캐피털 더벤처스와 손잡고 서울 서초동 사옥에 1600㎡ 규모의 공유오피스를 마련하기로 했다. 허재균 하이트진로 상무는 “다양한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과 교류하고 직접 투자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 쇼핑몰 무신사가 동대문에 ‘무신사 스튜디오’를 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문일 무신사 팀장은 “회사가 계속 성장하려면 참신한 새 브랜드를 꾸준히 발굴해야 한다”며 “입주사에 특허, 회계, 영업 서비스와 패션쇼 개최 인센티브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같은 창의성 발휘”

대기업이 태스크포스(TF)팀의 업무 공간을 공유오피스에 차려주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딱딱한 본사를 벗어나 ‘스타트업처럼’ 일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보라는 취지에서다. 에어비앤비, 돌비, 오포 등 유명 글로벌 기업도 한국지사 사무실을 공유오피스로 옮겼다.

하나금융티아이는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연구하는 ‘DT랩’ 사무실을 위워크 역삼역점에 냈다. 직원들은 이곳에서 ‘금융맨답지 않게’ 캐주얼 차림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한다. 아모레퍼시픽도 사내벤처로 선발한 여섯 팀을 공유오피스로 내보냈다. 이 중 한 팀인 ‘브로앤팁스’는 단 7개월 만에 첫 제품을 출시했다. 화장품 브랜드를 새로 하나 내놓는 데 1~2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게 빠른 속도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공유오피스

사무공간과 부대시설을 갖춰 놓고 누구나 입주해 사용하도록 하는 업무시설. 입주자는 계약 기간을 짧게 설정할 수 있고, 보증금 없이 사용면적에 따른 월 이용료만 낸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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