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 공유해 데스밸리 넘자… '따로 또 같이' 뭉친 스타트업

입력 2018-07-02 18:13  

인천 4개 제조기업 조합 결성
설비에 노하우·인력까지 공유

"기술·영업·기획력 다 갖춘 벤처는 없다"
'벤처 콤비네이션' 모델이 뜬다

스타트업 4社, 협동 사례 국회서도 발표

수천 만원짜리 설비 등 공유하며 생산비용 절감
R&D부터 제품 출고까지 한 공간에서 모두 이뤄



[ 김기만 기자 ]
헬멧 제조업체 초이스밸류, 생활용품업체 이제이홈, 업사이클링 제품 디자인 전문 휠라이프코리아, 3차원(3D) 프린팅 교육업체 메이키스트. 이 회사들은 인천 주안산업단지의 한 아파트형 공장 5층에 모여 있다. 4개사 이름이 하나의 표지판에 쓰여 있다. 관련 없어 보이는 4개 회사가 한 공간에 모인 것은 지난 2월. 벤처기업이 창업 3~5년차에 겪는 자금난인 ‘데스밸리’를 넘어서는 게 목표였다. 각자의 장점으로 다른 회사의 단점을 보완하는 모델이다. 협업을 위해 협동조합 아이스타팩토리(ISF·Idea Startup Factory)도 설립했다.

작은 규모 벤처기업들이 힘을 보태는 ‘벤처 콤비네이션(V-combination) 전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벤처기업 성장을 위한 새로운 모델 V-콤비네이션에 대한 토론회도 열린다.

아이스타팩토리 컨설팅을 맡은 정재우 메이키스트엑스 대표는 “대기업이 가진 기획력, 마케팅력, 기술력 등을 벤처기업이 한꺼번에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벤처기업의 장점을 하나로 모아보자는 취지로 협동조합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4개 회사는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엄두도 못 내는 기계를 함께 구입했다. 생산시설을 함께 쓰고, 서로 조언도 해준다. 함께 아이디어를 내 제품도 출시했다. 배종우 휠라이프 대표는 “폐자동차에서 나오는 금속을 활용해 만든 가구는 크라우드펀딩으로 목표 금액 300%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중소기업 간 협력을 통한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150여 개 일본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가 함께 설립한 제너럴프로덕션, 영국 조선기업과 토목기업의 합작법인 플로트마스터 등이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이다. 융합과 협업이 산업 트렌드가 됐다지만 국내에서는 성공사례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벤처기업은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영업력과 투자유치 능력이 부족해 낑낑 대다 사라져 가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벤처기업 3년 생존율 40%가 이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스타팩토리라는 협동조합을 결성한 초이스밸류 메이키스트 이제이홈 휠라이프코리아는 2014~2017년에 설립된 회사들이다.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벤처

이들은 생산시설뿐 아니라 필요할 때는 인력도 공유한다. 함께함으로써 ‘외로움’과 ‘막막함’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위로만 받는 게 아니다. 과거 5~6명만 있었던 때와 달리 30여 명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 투자자들이 찾아와도 ‘보여줄 만한 사무실’ 모습도 갖췄다. 사업화를 하기 위한 컨설팅과 시제품 개발 용역, 온라인 마케팅 등을 함께 하면서 시너지도 생겼다.

강석민 메이키스트 대표는 “다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대표들과 대화를 하면서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면서 각 회사 장단점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함께 장점을 공유하면 시너지가 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협동조합에 합류했다. 그의 말대로 헬멧업체 초이스밸류는 연구개발(R&D)과 정부 연구과제 수주에 강점이 있지만 제품 양산 경험이 부족했다. 메이키스트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3D(3차원) 설계 등에 능하지만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은 떨어졌다. 도마건조살균기와 같은 아이디어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이제이홈은 제품 개발 및 양산화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었다. 자원을 재활용해 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 제품을 생산하는 휠라이프는 온라인 마케팅에 강점이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능력을 공유하며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스타팩토리는 네트워크형 기술개발사업(산업통상자원부) 지원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자전거 또는 킥보드로 변형이 가능한 다변형 퍼스널 모빌리티를 함께 개발한다. 메이키스트(하드웨어 개발), 초이스밸류(소프트웨어 개발), 이제이홈(디자인 및 양산), 휠라이프(기구부 설계)가 각자의 장점을 살려 역할을 맡았다.

이제이홈이 생산하는 칫솔살균기와 휠라이프가 생산한 폐차부품 업사이클링 제품은 4개 회사가 힘을 합쳐 개발했다. 배종우 휠라이프 대표는 “폐자동차에서 나오는 금속 부품을 활용해 만든 가구는 크라우드펀딩으로 목표 금액 300%를 달성하는 성과도 거뒀다”고 말했다.

◆일본 제너럴프로덕션 사례

국내 전문가들은 혁신성장과 매출 1조원이 넘는 스타트업, 유니콘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같은 ‘벤처 콤비네이션’ 전략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소벤처기업을 각각 하나의 회사로 보는 게 아니라, 독특한 역량을 갖춘 단위(컴포넌트)로 보고 이들의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일본의 자동차 부품 중소기업 제네프로 사례를 자주 거론한다. 150개 중소기업이 제품을 공동개발하고 자동체 제조사에 납품하면서 품질관리도 함께한다. 이를 통해 규모를 키우고, 원가도 절감했다.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이스타팩토리는 오는 10일 국회에서 열리는 ‘혁신경제 포럼’에서 협동 사례를 발표한다. 조합 이사를 맡고 있는 강석민 대표가 발표자로 나서 벤처기업 간 상시 협력 사례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혁신경제실행전략 왜 V-콤비네이션인가’란 주제로 발표한다.

아이스타팩토리 컨설팅을 하는 정재우 메이키스트엑스 대표는 “지난 10년간 중소기업 육성에 지원한 금액은 100조원이 넘지만 여전히 스타트업 생존율은 낮다”며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간 연계와 협력 등을 활용해 역량을 보완하는 융합 방식 모델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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