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창재 기자 ] ▶마켓인사이트 7월3일 오후 3시51분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를 작성한 실무자가 해임됐다. 해당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두 회사 간 합병 찬성을 결정했던 투자위원회 회의 자료였다. 당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문형표 전 국민연금 이사장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국민연금공단이 선제적으로 자체 감사를 통해 실무자를 해임하자 적폐청산 실적 쌓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공단은 3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실 의무, 품위유지 의무 및 선관주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운용역 A씨를 해임 조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합병 당시 리서치팀장으로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채준규 주식운용실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7월 주식운용실장으로 승진한 채 실장은 기금운용본부 내부에서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채 실장은 보고서 작성 당시 삼성물산의 적정 가치를 산출하면서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도록 실무자 B씨에게 지시했다. 또 당시 비상장사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가치를 “확 키워보라”고 지시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의 가치를 불렸다. 이를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정당화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게 감사 결과의 요지다.
국민연금은 이번 감사와 관련해 김성주 이사장이 지난해 11월 취임하면서 밝힌 ‘기금운용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 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당시 합병 찬성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미리 결론을 내리는 건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민연금도 정권 코드에 맞춰 적폐청산 실적 내기에 나선 게 아니냐”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 내부 분위기는 더 뒤숭숭하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투자 행위에 대해 사후적으로 처벌하면 누가 어려운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겠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요한 인력 충원도 어려워졌다. 국민연금은 상반기에 38명의 운용역을 충원하기로 했지만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검찰 수사와 전주 이전 등의 영향으로 지원자가 부족해 20명을 뽑는 데 그쳤다.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 등 주요 보직이 공석인 상태가 지속되면서 기금 운용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해 7월 강면욱 전 본부장이 돌연 사임한 이후 1년째 공석으로, 조인식 해외주식실장이 직무 대리를 맡고 있다. 이번에 공석이 된 주식운용실장은 김종희 채권운용실장이 겸임하기로 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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