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ISD에 정부 '골치'
엘리엇과 전면전 가능성도
[ 고윤상 기자 ]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국민연금에 대한 사법 처리가 잇단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부르고 있다. 미국 국적의 헤지펀드 메이슨이 엘리엇매니지먼트에 이어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 중재의향서를 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건에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부당하게 개입해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는 엘리엇과 같은 주장이다. 법무부는 3일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과 공조해 ISD 제기
지난 4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ISD 중재 의사를 밝힌 뒤 해당 사건과 관련된 두 번째 ISD다. 엘리엇은 4월 중순 한국 정부에 ISD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엘리엇이 이후 추가 낸 문서에서 주장한 손해액은 약 7100억원이다.
메이슨은 처음부터 최소 1880억원(약 1억7500만달러)의 손해액을 들고 나왔다.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산정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엘리엇이 중재의향서로 분위기를 띄운 뒤 손해액을 제시하고 ISD를 준비하는 절차를 이미 밟아놨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메이슨과 엘리엇이 공조해 ISD를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메이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주주총회를 앞두고서도 엘리엇과 서로 물밑 공조를 한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엘리엇과의 ISD도 전면전이 확실시되고 있다. 절차상 한국 정부는 엘리엇과 협상해왔다. 하지만 엘리엇 측이 요구하는 손해액이 과도하게 크고 정부에서도 이를 받아주기 어려워 협상은 난항이었다. 한 대형 로펌의 국제중재 변호사는 “메이슨이 ISD 중재 의향을 밝힌 배경에는 엘리엇과 한국 정부의 협상이 불발돼 전면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것”이라며 “엘리엇과 메이슨 모두 올 하반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ISD를 공식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줄줄이 ISD에 부담 커진 정부
연이은 ISD에 한국 정부는 골치를 앓고 있다. 이미 한국 정부를 상대로 2조원대 론스타 ISD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다야니 ISD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해 730여억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엘리엇과 메이슨 측이 요구하는 손해액은 9000억원 수준이다. 한국 정부가 맞닥뜨린 ISD 관련 피청구액만 3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범정부 회의를 열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해 ‘적폐청산’ 등의 언급 자체를 자제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 스스로 헤지펀드에 유리한 증언을 해주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와서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가 ISD를 야기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듯한 조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줄줄이 ISD에 걸리지 않겠느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이 건과 관련된 추가 ISD 제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반대했던 해외투자자는 엘리엇, 메이슨 그리고 캐나다연기금으로 알려졌다. 지분율이 1%도 안 됐던 캐나다연기금이 한국 정부를 등지면서까지 ISD를 제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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