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제품도 정책도 새로운 가치에 민감해야

입력 2018-07-04 17:39  

'건강' '가족' 가치를 추가한 게임기 Wii처럼
고객의 변화하는 가치·욕망을 세심히 살펴
非고객까지 품에 안으며 새로운 시장 열어야

이경전 < 경희대 교수·경영학 >



독일 시장조사업체 GFK가 2006년 발간한 ‘로퍼 서베이’에는 57가지 인간의 보편적 가치 목록이 들어 있다. 1997년부터 30여 개 국가에서 성인 2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집계한 결과다. 이 57가지의 보편적 가치는 성취, 즐거움, 창조성, 헌신, 친밀성, 이타성 등 크게 여섯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능력, 지위, 야망, 건강, 물질적 안정, 공적 이미지, 용기, 인내, 부는 ‘성취’와 관련돼 있고 흥분, 레저, 개인성, 쾌락, 삶의 즐거움, 즐김, 오늘을 삶, 모험, 좋은 모습, 다양한 삶은 ‘즐거움’과 관련된 가치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 심리학자 밀턴 로키치도 1973년에 36가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2006년 로퍼 서베이에 들어 있는 ‘자연 조화’, ‘환경 보호’ 같은 가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반 인간의 가치와 이후 30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 인간의 가치는 달라지고 확장된 것이다.

그럼 2018년 현재 세계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2006년 로퍼 서베이에는 성소수자 인권이나 난민 보호,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한 가치는 명시돼 있지 않다. 최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 역시 새로운 가치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세계인의 가치 목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고 추가된다.

가치 목록을 유지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고 분석하는 기초가 된다. 한때 닌텐도를 일본 기업 시가총액 2위에 올려놓은 히트상품 위(Wii)는 전자게임기 시장의 블루오션을 창출한 사례다. 닌텐도 위는 기존 전자게임기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는데, 그것을 위 가치 목록에서 따져본다면 ‘건강’과 ‘가족 보호’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전자게임기는 청소년의 건강에 해로웠다. 방에 틀어박혀 게임에 몰두한 아이들은 운동 부족에 시달렸고 시력 또한 나빠졌다. 운동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닌텐도 위는 이런 게임기 시장에 ‘건강’이란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다.

또 기존 전자게임기는 아이들과 부모 사이를 떼어놓는 현상을 낳았다. 기존 게임기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끼리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닌텐도 위는 엄마 아빠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전자게임기를 절대 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부모도 닌텐도 위는 집어 드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이렇듯 기존 제품에 어떤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면 새로운 시장을 열어 비(非)고객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창업가와 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새로운 정책은 다양하면서도 변화하는 새로운 가치에 민감해야 한다. 고객, 시민이 어떤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지, 기존 제품과 서비스, 제도와 정책은 어떤 가치를 놓치고 있는지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당이 성장해 최종적으로 정권 창출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면 낡은 가치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무엇이 새롭게 떠오르는 가치이고, 각 세대와 지역, 직군의 사람들이 어떤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고양이의 눈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사업가와 정책 입안자는 고양이의 눈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21세기의 고객과 시민은 마치 고양이와 같은 존재라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고양이에게 함부로 다가가면 할퀴이기 십상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달려가도 결과적으로 할퀴일 수 있는 것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새로운 정책이다. 고양이를 급작스럽게 다루면 고양이는 도망간다. 더 심하게 다루면 고양이는 죽을 수도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고양이의 마음을 살피는 심정으로, 고객과 시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변화하는 가치와 욕망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정부 정책 성공의 첫 번째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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