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화동 기자 ]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불교계가 내놓은 히트 상품이 템플스테이다. 고요한 산사에서의 하룻밤은 많은 사람들의 오랜 희망사항이었다. 하지만 절에 아는 스님이라도 있어야 가능했다. 이 때문에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는 신세계였다. 만물을 깨우는 도량석부터 새벽예불, 발우공양, 참선, 공동 노동인 운력(運力), 사찰음식, 다도와 숲길 포행(산책)을 비롯한 사찰문화 체험에 이르기까지 산사의 일상은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해마다 급증했다. 조계종 산하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2002년 1만1714명이었던 참가자(연인원 기준)는 이듬해 10만 명을 넘어섰다. 2011년에는 42만 명, 지난해 참가자는 49만 명에 육박했다. 지금까지 누적 참가자는 연인원 447만여 명, 순인원으로도 218만 명에 달했다. 연인원 가운데 외국인이 49만5000여 명으로 10%를 넘었으며 지난해에만 연인원 4만7221명이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템플스테이를 ‘창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으로 선정한 이유다.
산사가 있어 가능한 템플스테이
현재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전국 130여 개 사찰 대부분은 산에 있다. 맑고 고요한 산사에서 일상의 번뇌를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경험이 아니라면 템플스테이 인구가 이렇게 비약적으로 늘어났을까. 최근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 대흥사, 마곡사, 봉정사, 선암사 등 7개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것은 산사의 역사적·현재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경사다.
이들 7개 산사는 7~9세기에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1000년이 넘는 긴 역사에도 신앙과 수행, 생활의 종합적 기능이 단절 없이 하나의 공간에서 이뤄져왔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유·무형의 유산들은 소중한 문화재가 됐다. 성당이나 수도원, 중국과 일본의 사찰 등 세계유산이 된 종교시설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산사처럼 여러 기능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탁발(걸식)을 하는 남방불교는 도시 또는 도시 근교에 절을 세웠다. 중국에도 산사는 많지만 공산 치하를 겪으며 불교 고유의 전통이 상당 부분 단절됐다. 승려가 가정을 이루고 출퇴근하는 일본의 산사에서는 생활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유네스코는 산사의 세계유산 등재와 함께 철저한 관리 및 보존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관광객 증가, 현실적 필요에 따른 건물 신축 등에 관한 대책을 세우라는 얘기다. 하지만 진짜 걱정되는 것은 따로 있다. 전통적 산사의 지속 가능성이다. 출가자는 급감하고 있고, 산사의 자급자족적 경영 시스템은 무너진 지 오래다. 2000년 528명이던 신규 출가자는 지난해 151명으로 급감했다. 올 상반기 수계자는 55명에 불과해 출가자 공개 모집에 나섰다. 벌써부터 “절을 지킬 스님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지경이다.
청정한 출가 정신의 후퇴와 승가(출가자 집단)의 세속화도 전통 불교를 위협하는 요소다. 사회 전반의 탈(脫)종교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종교에 대한 국민들 기대는 바닥 수준이다. 돈과 권력, 여자 문제 등을 둘러싼 출가자들의 일탈 행위는 이런 추세를 가속화한다. 흑백이 가려지진 않았지만 현재 불교계 주요 지도자 다수가 이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 출가자들이 불자와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산사에는 ‘역사’만 남고 사람의 발길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사스러운 일을 두고도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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