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컴퓨터를 잇는다
머스크, 뉴럴링크 설립
뇌 기능 강화하는 초소형칩 개발
AI시대, 인간 업그레이드 나서
저커버그도 '빌딩8' 활동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
"1분에 단어 100개 입력장치 개발"
[ 박근태 기자 ]
세계적 혁신의 아이콘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야심찬 도전에 나선 지 1년이 흘렀다. 두 사람은 지난해 뇌 기능을 강화하는 초소형칩 ‘뉴럴 레이스’와 생각만 하면 글자를 치는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각각 개발하겠다고 공언했다.
아직 성과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머스크가 뉴럴 레이스를 개발하기 위해 2016년 세운 뉴럴링크가 지난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정부에 쥐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허가해 달라는 신청서를 냈다는 소문만 돌았을 정도다. 저커버그의 핵심 연구조직인 ‘빌딩8’의 활동 역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정확한 뇌파 측정이 관건
사람의 뇌는 87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세포마다 1000개 이상 신호를 주고받는 상호 연결성(시냅스)을 갖고 있다. 사람이 판단을 하거나 말할 때 이들 신경세포들은 찰나의 순간에 신호를 주고받는다.
과학자들이 뇌 신호를 이용해 사람의 생각을 읽겠다고 시도한 건 이미 한 세기가 흘렀다. 독일 정신과 의사인 한스 베르거가 1924년 머리를 다친 환자의 두개골 피하에 백금전극을 삽입해 뇌파를 읽어들이는 뇌전도(EEG) 기술을 개발하면서다.
뇌전도 기술은 이후 두개골 피하가 아니라 두피(머리 표면)에 붙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보다 더 뇌파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피질전도(ECoG) 기술과 신경세포나 신경회로에서 나타나는 신호를 측정하는 방법이 잇따라 나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뇌파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측정하는 능력은 느리지만 점차 개선되고 있다. EEG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만 해도 뇌의 어떤 영역이 반응한다는 정도만 알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대뇌피질에 임플란트(전극이나 마이크로칩)를 꽂아 직접 뇌파를 측정하고 신경회로에서 평소와 다른 이상 뇌파만 뽑아내 측정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뇌 신호를 더 정교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됐다.
뇌파는 두피 바깥에서 측정하는 것보다는 뇌에서 직접 측정하는 방식이 선명하다. 조일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마이크로시스템연구단장은 “EEG가 경기장 바깥에서 내부 함성을 듣는 수준에 그친다면 단일 신경회로에서 나오는 신호를 측정하는 방식은 응원단 한 명 한 명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아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호킹 교수도 못 누린 기술
뇌 신호를 활용한 대표적인 분야가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뇌 기계 인터페이스(BMI)’ 기술이다. 미국 브라운대 연구진은 2012년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움직여 음료수를 마시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환자는 뇌에 96개의 작은 탐침이 붙어 있는 전극을 부착하고 몇 개월간 로봇을 움직이는 훈련을 받았다.
머스크나 저커버그는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컴퓨터와 뇌의 기능을 확대하기 위해 컴퓨터와 뇌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특정 영역이 아니라 뇌 전체 신호를 읽어들이는 그물망 전극을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2015년 전극처럼 사용할 수 있는, 그물처럼 접었다 펼쳐지는 전도성 폴리머를 작은 바늘을 통해 쥐 뇌에 주입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머스크는 이를 통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페이스북의 ‘빌딩8’ 팀은 EEG로 언어중추를 해석하는, 한 단계 더 발전한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빌딩8의 레지나 두간 최고책임자는 지난해 “뇌파만을 사용해 1분에 단어 100개를 입력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머스크의 구상은 원대하고 이상적인 반면 저커버그는 현실적이면서 중요한 난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올초 타계한 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끝내 뇌파를 이용한 언어소통 기술의 덕을 보지 못했다.
◆뇌 연구 혁신의 자극제
전문가들은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기술이 성공하면 응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내다본다. 생각만으로 화면에 타이프를 치고, 로봇팔이나 차량을 운전하고, 텔레파시처럼 뇌와 뇌 사이 교신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상당수 신경과학자는 이런 기술이 10년 내 가능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뇌 기술의 산업화는 최근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뇌 신호를 읽어들이는 센서기술 발전이 빠르다. 세계 신경과학자들은 한동안 유타대 연구진이 개발한 손톱보다 작고 100개 이상의 작은 탐침이 달려 있는 전극을 사용했다.
최근 조 연구단장 연구진은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기술을 이용해 동전보다 훨씬 작은 다기능신경탐침(뉴럴프루브)을 개발, 국내 연구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흔히 ‘유타 방식’으로 알려진 미국산 뇌전극을 대체할 제품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의 벤처인 뉴로는 간단한 소프트웨어로 머스크와 저커버그를 압도할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뉴럴링크와 빌딩8이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반면 뉴로는 수술하지 않고 뇌파 데이터를 앱(응용프로그램)이나 장치에서 간단하게 명령으로 바꾸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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