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영의 무브무브 (2) 세상에 이런 곳이 ! 필리핀 바타네스주 삽탕, 이바얏 섬
바탄 섬 남쪽 해안가에 서면 아련히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작은 섬이 바다 너머에 보인다. 잉크색 바다 한가운데 연녹색의 낮은 언덕,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곳은 이바탄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바타네스 여행의 하이라이트, 삽탕 섬이다. 바타네스주는 필리핀 최북단에 있는 1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작은 주인데 10개 섬 중 바탄 섬, 삽탕 섬, 이바얏 섬 세 군데에만 사람이 산다. 대만 남단에서 190㎞, 마닐라에서 860㎞ 떨어져 있어 지도에서 보면 필리핀보다 오히려 대만 땅처럼 보이기도 하는 곳. 현지의 이바탄 문화를 더 가까이 느끼고 싶다면 삽탕과 이바얏까지 들어가보시길….
삽탕-글·사진 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삽탕으로 가는 관문, 이바나 포트
필리핀 최북단 바타네스주에 사는 원주민들을 이바탄(Ivatan)이라 부른다. 이바탄들은 바타네스 전체에 1만8000여 명이 분포하고 있는데, 대부분 필리핀 지역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언어도 타갈로그어가 아니라 이바탄어를 쓰는데, 이바탄어를 실제 들어보면 스페인어와 비슷하고 리듬은 중국어 같이 들린다.
이바탄을 가까이 만나려면 수도가 있는 바탄 섬 외에 삽탕 섬을 방문하는 것이 정석이다. 바타네스 전체 인구 1만8000명 중 삽탕에 사는 이들은 2000명이 안 된다. 인구도 적지만 바타네스의 유인도(有人島) 중 크기도 가장 작다. 소, 말, 염소만 방목해 키우는 작은 섬 두 개가 위성처럼 달려 있는, 더없이 신비롭고 평화로운 곳이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바탄 섬의 이바나 포트에서 배를 타야 한다. 이바나 포트엔 몇 가지 볼거리가 있다. 하나는 성당, 또 하나는 조금 특이한 카페다.
포트를 마주보고 당당히 서 있는 레몬색의 건물은 1814년에 완공된 이바나 성당(San Jose de Ivana Church)이다. 바다와 삽탕 섬을 조망할 수 있는 이바나 성당은 거센 바닷바람과 지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보존이 잘돼 있는 편이다. 스페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밝은 색상의 파사드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바닷가의 정취가 더해져 운치가 그만이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가게로 유명한 아니스티 스토어(Honesty Store)도 오가면서 한 번쯤 들러봐야 할 이 동네 명물이다. 이 가게엔 손님만 있고 주인은 없다. 가게에 적혀 있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 가게는 정직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너무나 작습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머물 자격이 있습니다(BE HONEST! Even if others are not, even if others will not, even if others can not).’
손님들은 필요한 것을 고르고 노트에 구입한 물건을 적고, 상자에 돈을 넣고 간다. 일종의 무인카페다. 아니스티 스토어는 1995년 삽탕 섬에서 교사를 하던 엘레나 가스타뇨가 문을 열었다. 바탄 섬과 삽탕 섬을 오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공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물과 커피, 스토브를 둔 것이 시작이었는데 2000년에 지진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새로 열었다. 사람들이 붙인 ‘아니스티 스토어’란 이름의 공간엔 기념품, 음료, 허브, 먹거리 등이 준비돼 있고 누구나 쉬어가면서 이 가게의 철학을 배운다. 범죄율 0%, 바타네스의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돌과 산호로 만든 이바탄 하우스 눈길
삽탕 섬으로 가는 날. 파도가 넘실넘실, 배가 울렁울렁, 파도가 꽤 높다. 테마파크에 있는 보트처럼 알록달록 귀여운 모양의 배는 오늘처럼 파도가 높아도 절대 뒤집히지 않도록 곡선을 잘 살려 만들었다. 이 전통배의 이름은 팔루와(Faluwa)다. 이런 파도가 꽤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낚싯대를 내리고 고기를 잡는 현지인들도 있다. 파도가 작은 배의 한 면에 닿으면서 부서져 내리는 모습, 이른 아침 생기 있는 햇빛이 짙푸른 해수면, 부서지는 파도와 만나면서 만드는 다양한 빛을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금방 삽탕 섬에 도착한다. 배 타고 내릴 때 선원이나 탑승자나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짐을 들어주고 날라준다. 배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이바나 포트에서 출발한다. 돌아오는 배는 오후 2시, 날씨에 따라 오후 5시께까지도 운행한다. 삽탕 섬 반나절 투어를 하는 이들은 오전 배로 들어가 오후 2시 배를 타고 나오면 된다. 우린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으니 좀 더 여유가 있다. 삽탕 섬에 내리면 환경세를 내야 한다. 인당 200페소.
미리 예약해 둔 지프니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봤다. 마을, 아름다운 해변, 뷰포인트, 등대, 성당…. 바탄 섬 관광과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삽탕 섬에선 이바탄 사람의 생활을 훨씬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삽탕엔 6개 마을이 있다. 그중 차바얀 마을, 숨낭가 마을, 사비독 마을에 들렀다. 차바얀 마을은 ‘이곳을 들르지 않으면 바타네스 여행은 불완전하다’고 할 정도로 이바탄 생활상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민속마을 같은 곳이다. 그 가치는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도 지정됐을 정도.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투박해 보이는 돌 집들이 보인다. 돌과 산호를 쌓아 벽을 만들고 코곤 잎으로 지붕을 올린 전형적인 이바탄 하우스들이 오밀조밀 마을을 채우고 있는데 이 집들은 엄청난 공과 시간을 들여 지은 것이다. 산호를 1주일간 구워 벽을 세우고 코곤(Cogon)이라는 풀을 수십 겹 엮어 지붕에 올렸다. 코곤은 야자수의 일종인데 억새보다 키가 큰 사초식물로 섬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다.
쌓아 올린 산호와 돌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창문과 창문에 달린 바람에 휘날리는 천들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집 안에 있는 가구들도 사람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 하니 하나하나 자세히 둘러보게 된다.
차바얀 마을의 삽탕 방직공협회에선 코곤 잎을 엮어 지붕을
만드는 법, 마른 풀을 빗어내려 우천 시 가발처럼 착용하는 머리장식 바쿨(Vakul)을 만드는 걸 구경할 수 있다. 대대로 계승된 이바탄 전통 방직 시연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도시인의 눈으로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쩌면 아직도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싶지만, 마을은 더없이 깔끔하고 잘 정돈돼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이보다 풍요로울 수 없다. 골목 사이로 유유히 걸어 다니는 닭, 염소, 개와 고양이,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울려 퍼진다. 어디에도 결핍의 구석은 없다.
리틀 홍콩 별명 붙은 숨낭가 마을의 일몰
야자수가 빼곡히 들어선 높은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앞으로는 파랗게 반짝이는 바다가 흐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의 사비독 마을에선 부리가 구둣주걱 모양의 저어새도 만났다. 멸종 위기의 새라 신기하기만 했다. 홍콩인들이 마을의 돌들이 홍콩의 것과 닮았다 해서 ‘리틀홍콩’이란 별명을 붙인 숨낭가 마을은 남서쪽 끝에 있어 항구와 가장 멀다. 삽탕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언덕과 산,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천혜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삽탕의 길들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가끔은 울퉁불퉁한 산길도 달렸다. 갑자기 길을 가로막는 말이나 소들을 만나 한참 기다리기도 하며, 이런 길을 따라 MTB 바이크나 트레킹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눈을 돌리면 광활한 초원에 양탄자처럼 깔린 키 작은 꽃들, 이름 모를 우아한 새들과 자유롭게 노니는 말과 소, 염소가 보인다. 천국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어디에 와 있는 걸까? 잠시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다.
삽탕에서 가장 유명한 모롱해변에 들렀을 때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모롱비치는 바타네스 전체를 대표하는 해변이라 해도 좋을 아름다운 화이트 비치다. 해변이 크진 않지만, 필리핀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뽑히기도 한 곳이다. 여기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진정한 자연의 작품인 아치모양의 바위도 볼 수 있었다. 해변 한쪽에는 작고 아늑한 나카부앙 동굴이 자연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이곳에서 보는 풍광이 아름다워 모롱비치는 나카부앙 비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삽탕의 밤, 문명에서 멀어질수록 행복하다
삽탕에 숙박을 정하는 여행객들이 많지 않지만 두세 군데의 숙박시설이 존재하긴 한다. 호텔이라기보다는 기숙사 같은 건물에서 여러 명이 욕실을 나눠 쓰는 형태다. 삽탕의 숙소들을 보니 바탄 섬에 머문 곳은 럭셔리한 고급 호텔이었다. 우리 일행은 해변가 근처에 있는 헤리티지 빌딩에 머물렀는데 미국인이 머물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용했던 건물이라 했다. 큰 가정집을 통째로 빌린 듯한 기분이긴 했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열쇠도 없고, 모든 창문이 다 열려 있고, 방문도 잠그지 않고, 거실에 노트북이나 카메라 같은 물건을 놓고도 현관문까지 다 열어놓고 지내야 했다. 처음엔 적응이 안됐지만 곧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가게에서 산미구엘을 사서 바닷가에서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간단한 캠프파이어를 한 뒤 별 구경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아예 야외 취침을 선택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집 앞 평상에 천을 깔고 단잠을 잤다 한다.
삽탕에서 알아둘 것이 있다. 밤 12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는 전체 섬에 전기가 차단된다. 물론 오후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이바탄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 냉장고는 어떡하냐고? 그런 전자제품, TV, 에어컨도 이 섬에선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삽탕 섬에선 작정하고 현지인들의 집에 머무는 홈스테이 경험을 한다면 이것 또한 또 다른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바타네스의 마지막 유인도, 이바얏(Itbayat)은 어떨까? 필리핀 최북단에 있는 이바얏 섬은 바타네스의 유인도 중 면적이 가장 크고 3000여 명의 이바탄이 살고 있다. 붉은 토양, 깎아지른 절벽, 인생 하이킹, 낚시, 다이빙, 동굴 탐험 등의 흥미로운 체험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있지만 이곳에 가긴 쉽지 않다. 바탄 섬에서만 네 시간 배를 타야 하고, 워낙 오지이다 보니 모든 것의 물가가 비싸다. 여행 자체가 내공이 좀 필요한 고급 전문가 코스 정도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이바얏 섬에 가 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상 이런 곳은 또 없을 테니까!
조은영 작가는…
한 권에 한 지역, 한 도시, 한 마을만 얘기하는 트래블 매거진 ‘MOVE’ 발행인이다. 책에서 못다 한 여행지의 깊은 이야기를 ‘여행의 향기’에서 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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