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웅 기자 ]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올여름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이 많다. 정부는 국내 여행을 권장하지만 마땅히 갈 만한 곳이나 즐길 만한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내국인이 이럴진대 외국인 여행객이라면 더욱 한국 관광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성싶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하계휴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82.6%가 국내 여행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6년 87.1%, 지난해 83.6%에서 계속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바가지요금’, 질 낮은 숙박업소, 변변치 못한 관광 프로그램, 협소한 주차공간, 짜증 나는 교통체증 등 관광인프라 개선이 미진하다는 국민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줄어드는 국내 관광 행렬관
올 들어 5월까지 외국인의 국내 관광 입국 규모가 전년 동기보다 3.1% 늘었다지만, 이는 지난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감소한 데 따른 반사효과로 추정된다. 게다가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특수’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외래 관광객이 늘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양적 팽창이 아니라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외래 관광객 1인당 지출 규모는 2016년 1625.3달러에서 지난해 1481.6달러로 줄었고 올해도 감소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마땅한 볼거리가 없으니 서울 제주 등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지역 편중현상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더구나 제주는 최근 예멘 난민 사태가 불거지면서 관광지로서의 매력도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의 관광진흥 노력도 뚜렷이 눈에 보이는 게 없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 중심의 복지관광’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지만 지난해 말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제1차 국가관광전략회의’를 개최하면서 발표한 새 관광정책이 올 들어 구체화된 게 전혀 없다. 근로자 휴가지원 등 몇 가지 사업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 기획된 사업이 실행되는 정도다. 지난 정부는 관계장관회의도 자주 여는 등 관광진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아젠다나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광산업 홀대론도 나와
국내 여행업계에서는 ‘관광산업 홀대론’마저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있었던 청와대 관광비서관 직책이 이번 정부에서 폐지된 데다 올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주된 관심이 남북한 관계 개선에 맞춰져 있지 않냐는 의심이다. 극단적으로는 조만간 재개될지도 모를 금강산 백두산 원산 등 북한관광을 독려하기 위해 남한 내 관광진흥을 소홀히 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2009년 외국인 관광객 숫자에서 한국에 역전당한 이웃 일본은 10년을 내다보고 착실히 관광 인프라를 정비했다. 숙박시설을 확충하고 산골짜기에 있는 시골 마을 시라카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관광지로 개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화가치 하락에 힘입은 측면도 있겠지만 일본은 2015년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서 한국을 재역전했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줄곧 국내 여행만 독려할 뿐 어디로 어떻게 여행을 떠날지, 어떤 프로그램을 즐길지 등 방향성과 관광 모델을 고민하고 제시한 적이 없다. 고대 로마제국의 사상가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는 ‘여행과 장소의 변화는 정신에 활력을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여행은 계획단계부터 ‘어디 가서 뭘 하나’ 고민하느라 활력보다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
reda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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