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텃밭으로 공동체 되살리고
마을기업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
청년 예술가 육성한 오케스트라
저소득층·소수자 보듬는 협동조합
작년 745개 기업 매출·일자리 증가
市 주도 주민·시민단체와 협업 성과
[ 오경묵 기자 ]
대구 동구의 금호강변 아파트촌에는 1만3000㎡ 규모 대형 도심텃밭이 있다. 이곳은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면서 우리가 그동안 잃고 살았던 많은 것을 되찾아주고 있다. 주민들은 메밀과 배추를 심어 가을엔 메밀묵, 겨울에는 김장나눔으로 마을축제를 연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무상으로 제공하고 사회적 기업 동행(대표 강현구)이 주관해 지역민, 마을공동체와 함께 꾸려가는 LH 율하 나눔텃밭이다.
유럽의 ‘놀라운 먹거리(도시와 마을의 노는 땅에 과일과 채소를 공동으로 재배)’보다 더 많은 사회경제적 가치가 자라는 대구 사회적 경제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조금 떨어진 용계동에서는 2011년 설립된 사회적 기업 유니월드(대표 최장희)가 매출 46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대구 최초의 1사 1사회적 기업으로 출범한 유니월드는 고령자, 여성 가장, 결혼이민자,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근로자는 2011년 10명에서 53명으로 늘었다.
대구의 사회적 경제가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에 새로운 상상력으로 다양한 사회적 가치 실현에 도전하면서 일거리와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청년기업들도 대구 사회적 경제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한 해 1000여 명의 4년제 음대생이 배출되지만 4대보험 혜택을 받는 예술가는 채 3%도 안 된다. 예술가들이 활동할 안정된 직장이 없어서다. 이런 문제에 주목한 청년예술기업들이 대구를 창조도시로 만들고 있다.
영남필하모니오케스트라(대표 최지환)는 전국에서 흔하지 않은 오케스트라 사회적 기업이다.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등 클래식 악기를 전공한 예술가들이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예술가들에게 안정적 소득을 보장하며 그들의 꿈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인 꿈꾸는 씨어터(대표 김강수)는 2012년 설립돼 난타와 같은 퍼포먼스 공연 등 복합 예술 장르를 개척하며 매출 6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취약계층과 사회에서 소외당한 소수자를 위한 문제에는 대구 사회적 경제 기업과 대구혁신도시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이 협력하고 있다.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대표 김지영)은 에이즈에 대한 인식 개선, 감염인 자활을 돕기 위한 소셜카페 빅핸즈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원장 문용식)은 지난 4일 대구 본원 카페 운영을 레드리본에 위탁했다. 한국가스공사(사장 정승일)는 2016년부터 다울건설협동조합과 함께 노숙인 일자리 마련을 돕고 있다. 노숙인과 쪽방 거주자에게 목공, 도배, 방수 등 건축 전문기술을 가르치는 아카데미를 운영해 20명이 취업에 성공하고, 2명이 창업하도록 도왔다.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첫 통합박람회가 대구에서 열린다. 대구시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등 13개 정부 부처와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마을기업협회, 전국협동조합협의회 등 5개 기관이 함께하는 대규모 박람회다. 개최지가 대구로 정해진 것은 대구의 사회적 경제가 이처럼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이상적인 모델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대구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회적 기업 118개(예비 포함), 마을기업 79개, 협동조합 548개 등 745개의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2013년(302개)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사회적 기업의 평균 매출은 2012년 5억4000만원에서 2017년 6억6000만원으로, 마을기업의 평균 매출은 53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었다. 일자리는 2014년 말 4200개에서 7500개로 3300개 증가했다.
사회적 기업의 성과도 고무적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인증 사회적 기업 75개 가운데 지원기간 만료 후에도 살아남은 기업이 66개다. 윤정희 대구시 사회적경제과 주무관은 “사회적 기업의 생존율이 88%로 일반 창업기업 생존율 27.3%보다 월등히 높다”며 “청년들의 창업을 통한 청년 역외 유출 방지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 제품 우선 구매와 착한 소비로 2017년 공공구매액도 118억원으로, 2014년(38억원)보다 3배 이상으로 늘었다.
대구의 사회적 경제가 이처럼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대구시민과 시민단체 등이 중심이 돼 연대와 협력 속에 공동체 회복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을 상향식으로 쏟아왔다. 2012년에는 대구사회적기업협의회도 출범했다. 2014년 권영진 시장이 취임하면서 사회적경제과를 신설했다. 대구사회적경제 민관정책협의회를 꾸리면서 사회적경제 5개년 종합발전계획이 시행됐다. 민간의 다양한 제안을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이 체계화하면서 대구시 8개 구·군 가운데 7개 구·군에서 사회적경제협의회가 조직됐다.
사회적 기업 중간지원 조직인 ‘커뮤니티와 경제’ 등 중간 지원조직의 역할도 컸다. 김재경 대구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커뮤니티와 경제 소장)은 “광역 단위뿐 아니라 마을 구·군 등 기초 단위 사회적 경제 조직과 협의체가 자생적으로 생겨 상향식으로 발전한 것이 대구 사회적 경제의 경쟁력”이라고 평가했다.
대구시는 올해를 사회적 경제 재도약의 원년으로 선언했다. 민간과 행정의 건강한 거버넌스를 통한 협치와 사회적 경제 기업 간의 연대와 협업으로 고용 불안과 양극화 문제 해결에 집중할 계획이다. 권 시장은 “사회적 경제는 지역사회에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고 일자리를 통해 적극적인 복지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대구시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라며 “기업 발굴과 성장 촉진, 생태계와 자립 기반 조성을 위해 현장 중심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 사회적 경제
사람 중심의 경제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 주거 육아 교육 등 인간 생애와 관련된 영역에서 경쟁과 이윤을 넘어 상생과 나눔의 삶의 방식을 실현하는 경제.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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