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정진 기자 ] “‘흥보’가 ‘놀보’ 되고 ‘놀보’가 ‘흥보’ 된 사연 들어볼 텐가?”
판소리 ‘흥부가’에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덧붙인 국립창극단의 창극 ‘흥보씨’는 흥보·놀보 형제의 출생에 얽힌 비밀로 시작한다. 형인 놀보가 원래는 흥보의 배다른 동생이었다는 것. 흥부가를 아는 이들의 고정관념을 단숨에 뒤집은 파격이다.
오는 13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창극 ‘흥보씨’는 비상한 필력과 기발한 연출력으로 유명한 고선웅 연출가가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고 연출가는 판소리 일곱 마당 중 하나인 ‘변강쇠전’을 각색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로 2014년 처음 창극에 도전했다. 이 작품으로 같은 해 차범석희곡상을 받았다. 창극으론 처음으로 2016년 150년 전통의 프랑스 테아트르 드 라빌 극장에 진출하기도 한 창극계 ‘스타 연출가’다.
이번 작품은 그의 두 번째 창극이다. 지난해 4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 뒤 약 1년 만에 재공연한다. 2막 일부 장면을 수정했지만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원작 주제는 그대로다. ‘마당쇠’ ‘제비’ ‘외계에서 온 스님’ ‘말하는 호랑이’ 등 원작에 없던 캐릭터를 등장시켜 웃음과 흥을 끌어낸다.
작품은 이 시대에 흥보처럼 바보같이 사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놀보처럼 사는 것이 옳은지 관객 스스로 자문하게 한다. 고 연출가는 “흥보를 미화하거나 놀보를 비난할 의도로 각색하지 않았다”며 “그저 파란만장한 수난을 겪지만 끝내는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를 더 이롭게 했던 한 인간, 흥보를 보여주는 데 목적을 뒀다”고 설명했다.
흥보 역할은 소리꾼으로는 드물게 팬 카페까지 생기며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준수가 맡았다. 놀보 역은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 변강쇠 역을 맡으며 고 연출가와 호흡을 맞췄던 소리꾼 최호성이 열연한다. 작품 속 음악도 화젯거리다. 음악감독과 작창, 작곡을 맡은 소리꾼 이자람이 ‘흥보가’의 ‘가난타령’, ‘박타령’ 등 판소리와 민요의 원형을 현대음악으로 입혀 음악적 대비와 긴장을 꾀했다. 국악기별 소리 특성을 활용해 만든 음향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감초 같은 재미도 선사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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