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코카콜라와 싸워온 '음료에 미친 남자' 조운호

입력 2018-07-12 21:15   수정 2018-07-12 21:15



(안효주 생활경제부 기자) ‘음료에 미친 남자’.

10일 경기 용인의 하이트진로음료 본사에서 만난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와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든 생각입니다. 조운호 대표는 음료업계의 ‘레전드’로 불립니다. 개발한 상품마다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인데요. 웅진그룹 기획조정실 재직 시절 ‘가을대추’ ‘아침햇살’을 비롯해 ‘초록매실’, ‘하늘보리’를 탄생시켰습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38세 때 부장에서 바로 사장으로, 업계 최연소 대표까지 됐습니다. 세계 최초의 쌀 음료 아침햇살을 만들 당시에는 사내에서 ‘미쳤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조 대표의 성공이 돋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만든 제품들이 연간 1000억원 이상 팔리거나, 초고속 승진을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의 성공 이면에는 ‘판을 바꿔보자’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음료시장은 수십 년 간 콜라와 사이다 등 해외에서 물 건너온 제품이나 일본에서 베껴온 제품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는 토종 국산음료를 만들겠다는 한결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쌀과 매실, 대추 등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원료를 사용해 마실거리를 개발했지요.

조 대표가 우리 음료에 빠지게 된 건 젊은 날부터 이어온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습니다. 갓 은행에 취업했던 이십대 초반, 그는 우연히 경기 용인민속촌에 놀러왔다가 풍물패를 발견합니다. 장구, 꽹과리 등 전통 악기를 신명나게 치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온몸을 내던지는 듯한 풍물패의 노인들은 힘든 기색은 커녕 한없이 행복해 보였다”고 회상하며 “그 길로 풍물을 배우고 첫 직장이었던 은행 안에 풍물놀이패 동호회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져도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조 대표는 “그때부터 우리 전통,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싹트면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고 했습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 관련 도서를 탐독하는 등 인문학 공부에도 매진했지요.

지난해 하이트진로음료 대표로 자리를 옮겨 12월 출시한 ‘블랙보리’는 출시 7개월만에 판매량 2000만병을 돌파했습니다. 올해 안에 통상 ‘대박’ 상품의 기준인 연간 매출 300억원의 고지를 넘어 400억원치를 팔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가 낳은 자식인 하늘보리를 뛰어넘을 수 있을 지, 업계는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블랙보리는 한국 음료제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내 500개 점포를 갖춘 유기농 전문마트 트레이더 조에도 입점할 예정입니다. 해당 업체의 구매담당자(MD)가 식품 박람회에서 블랙보리를 맛본 뒤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한 맛'이라며 먼저 입점을 제안해 온 게 계기가 됐습니다. “보리차로 세계 음료 시장 트렌드를 이끌어 보겠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조 대표의 모습. 그의 열정을 보며 10년 뒤 우리 음료의 미래를 그려보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습니다. (끝) /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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