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업계 전문가들이 말하는 5가지 징후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3년 내 주택업계에 ‘퍼펙트스톰’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본래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자연현상을 의미하는 퍼펙트스톰은 복수의 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남으로써 직면하게 되는 절체절명의 초대형 경제위기를 뜻하는 경제용어로 쓰인다. 앞서 2008년 미국발금융위기를 예견한 뉴욕대 루비니교수가 2011년 7월 미국경제의 이중침체, 유럽의 경제위기, 중국의 경제경착륙 등 악재들이 겹쳐서 2013년까지 세계경제가 ‘퍼펙트스톰’을 맞이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경제용어로 쓰이게 됐다.
퍼펙트스톰은 국가적 차원, 세계적 차원에서 직면하는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부동산 시장과 주택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3년 내 ‘퍼펙트스톰’을 예견하고 있다. 이러한 징후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건설원가 상승에 따른 중소 건설사 도산 △구매력 저하에 따른 미분양 급증 △입주 충격에 따른 지방·수도권 외곽 시장 붕괴 △제조업 경쟁력 저하에 따른 소득 감소 △10년 주기설 재연 등이다.
◆건설원가 상승에 따른 중소 건설사 도산
첫 번째로 꼽은 징후는 원유 가격 급등, 주 52시간 근무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유례없는 건설원가 상승이다. 비용 상승으로 공사 원가가 상승하지만, 수주가 없다면 건설사들은 도산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미국은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복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지난 6월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들에게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해달라고 촉구하면서 일부 외신은 연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유가급등세가 지속되면 아스팔트, PVC마감재, 새시 등 원유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건설자재 비용이 상승한다. 레미콘, 덤프트럭, 굴삭기, 타워크레인 등 중장비 사용료도 증가한다. 결국 공사원가가 급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로 인한 인건비 상승도 건설원가를 끌어올린다. 2018년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전년 대비 16.4% 뛰었다. 전년도 상승폭이 7.1%였던 점을 고려하면 두 배 가량 뛴 셈이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시급 1만790원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보다 43.3% 가까이 인상하라는 주장이다. 주 52시간 근무에 따른 인건비 증가도 불가피하다. 주택업계 전문가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근로자들 작업시간이 줄어드니 건설사 입장에서는 이자가 더 불고 회수 기간이 늘어난다”며 “상승한 인건비에 생산성을 적합하게 끌어올리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더불어 부동산대책을 연달아 발표하고 심의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정부의 정책 기조 역시 주택시장의 붕괴를 가져오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공사원가는 상승하는데 분양가는 규제하니 건설사 입장에서 손해가 크다”며 “결국 리스크를 버틸수 있는 대형사들만 살아남고 중견사들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매력 저하에 따른 미분양 급증
설상가상으로 수요자들의 구매력은 저하되고 있다. 세금·이자부담 등이 늘면서 1인 당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가처분소득은 가계의 소비·지출 여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처분소득이 줄면 가계의 여유자금이 줄게 돼 소비를 꺼리게 된다. 올해 1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명목기준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376만70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0.3% 증가했다. 1분기 가처분소득 증가율이 0%대로 하락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다음해인 2009년 이후 9년 만이다. 물가상승률까지 반영한 실질가처분소득은 7분기 째 감소세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기름값 상승과 수출 악화 등도 가처분소득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기름값, 세금, 전기료, 교통비 등 필수지출비용은 꾸준히 늘어날 뿐 줄어드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며 “필수지출이 꾸준히 오르면 가처분소득이 늘지를 않아 주택 구매수요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입주 충격에 따른 지방·수도권 외곽 시장 붕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시작될 입주 리스크 역시 퍼펙트스톰설의 근거 중 하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약 45만 가구다. 2019년에는 37만 가구, 2020년에는 26만 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최근 주택산업연구원은 준공된 아파트 10채 중 4채는 입주 지정 기간이 끝나는 시점 기준으로 빈집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이 기관은 지난달 입주경기실사지수(HOSI)는 59.4라고 발표했다. HOSI는 새 아파트 입주 지정 기간이 끝나는 단지의 분양 호수 중 입주 및 잔금을 낸 가구 비중을 의미한다. 특히 울산, 강원, 경남 지역은 HOSI 전망치가 처음으로 40선을 기록했다. 10채 중 6채가 빈집이 될 거라는 뜻이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옮겨오는 인구 이동까지 고려하면 지방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지방 입주물량이 올해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데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인구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 건설사 임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실시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부작용도 우려된다”며 “강제로 이주에 따른 복원력으로 지방 입주리스크는 한층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조업 경쟁력 저하에 따른 소득 감소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제조업의 위축도 주택시장의 리스크 요인이다. 제조업에 의지한 지방도시들의 몰락이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창원, 구미 등이 미국 디트로이트시의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디트로이트시는 GM·포드 등 자동차 주력 공장이 들어선 미국 대표 공업도시였지만, 자동산산업이 추락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미 창원, 구미, 거제 등 제조업에 의존했던 지역의 주택시장 붕괴는 시작됐다. 경남 창원은 수개월 째 미분양 아파트 전국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5월 기준 창원 미분양 아파트는 6894가구다. 기반산업인 기계, 조선기자재, 자동차 부품 등 제조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상주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아파트 공급이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미분양이 적체됐다.
구미는 삼성전자가 2010년 이후 주요 스마트폰 제조라인을 하나둘 해외로 옮기면서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구미시 아파트값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2015년 12월 대비 11.4% 하락했다. 이 관계자는 “제조업이 스마트팩토리로 바뀌면서 공장이 더이상 지방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며 “국내에는 헤드쿼터만 남겨두고 공장은 소비재 가까운 곳으로 가는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10년 주기설 재연?
부동산업계에 풍문으로 돌고있는 10년 주기설도 ‘퍼펙트스톰설’에 힘을 싣는다. 10년 주기설은 10년을 기점으로 아파트값이 활황과 침체를 반복한다는 주장이다.
시작은 1980년대다. 당시 서울 동부이촌동, 여의도, 반포, 강남 등에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했던 한양건설, 라이프건설, 삼호건설 등은 중동 진출로 인한 사업성 악화로 한꺼번에 무너졌다. 10년 후인 1990년대 중반에는 1기 신도시 개발과 88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아파트를 대거 공급한 신동아건설, 우성건설 등이 미분양을 견디지 못하고 엎어졌다.
외환위기 시절인 1997~1998년에는 청구, 우방, 건영 등 지방을 기반으로 한 주택업체들이 잇따라 무너졌다. 이후 무섭게 치솟던 부동산 시장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또다시 하락했다. 당시 시장을 주도했던 월드건설, 우림건설 등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한 주택업계 전문가는 “10년 주기 사이클에 따르면 2008년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쯤이 다시 무너질 차례”라며 “유가 급등, 무역전쟁, 정부 부동산규제 등의 변수까지 더해져 주택업계는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넘어서 팔면초가(八面楚歌)에 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소은 기자 luckyss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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