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센터코트 선수 입장문 위에 유명한 시가 적혀 있다. 영국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의 ‘만약에(If)’에 나오는 구절이다. ‘승리와 좌절을 만나고도/ 이 두 가지를 똑같이 대할 수 있다면(If you can meet with Triumph and Disaster/ And treat those two impostors just the same).’
‘영국인 애송시 1위’로 꼽히는 이 시는 키플링이 1910년 열두 살 된 아들에게 주려고 썼다. 험한 세상의 길잡이가 될 조언을 32행에 담아냈다. 첫 부분은 ‘모든 사람이 이성을 잃고 너를 비난해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를 의심할 때 자신을 믿고/ 그들의 의심마저 감싸 안을 수 있다면’으로 시작한다.
윔블던에 새겨진 시구의 다음은 ‘네가 말한 진실이 악인들 입에 왜곡되어/ 어리석은 자들을 옭아매는 덫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있다면/ 네 일생을 바쳐 이룩한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낡은 연장을 들어 다시 세울 용기가 있다면’으로 이어진다.
키플링은 이렇듯 지혜와 포용, 사랑과 겸손의 미덕을 하나씩 일깨우고는 ‘무엇보다 아들아,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는 소설 《정글북》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42세 때인 1907년 최연소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영국에 맞서 불복종 운동을 편 간디도 이 시를 애송했다. 젊은 시절 영국에서 공부한 간디와 6세 때까지 인도에서 자란 키플링의 마음이 서로 통했던 모양이다.
숱한 고난을 뚫고 오디션 스타가 된 오페라 가수 폴 포츠도 “이 시에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전설적인 액션 스타 이소룡은 금속 장식판에 새겨놓고 날마다 뜻을 음미했다. 올해 초에는 워런 버핏이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 이 시를 인용해 화제를 모았다.
오늘(토)과 내일(일) 윔블던에서 또 한 번 승패의 명암이 엇갈릴 것이다. 누가 이기고 지든 ‘승리’와 ‘좌절’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만 있다면, 그는 이미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모든 이의 존경을 받고도 남으리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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