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前 공시 누락에 중징계… 정치 논리 휘둘린 '삼바 사태'

입력 2018-07-15 18:25  

현장에서

심의 중 여야 의원들 성명 '압박'
금감원은 시민단체 논리 적용

상장 폐지 막고 공은 검찰로
"증선위 결론은 정무적 판단"

하수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 하수정 기자 ] “이해관계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균형된 결론을 내리겠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증권선물위원회를 지난달 7일 시작하며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증권선물위원장)이 이같이 발언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지난 12일 증선위는 ‘고의적 공시 누락’ 혐의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핵심 쟁점인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선 금융감독원에 재감리를 요청하며 판단을 미뤘다.

법 위반으로 지적된 2012~2015년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하기 전 기간으로, 재무제표에 대한 주요 정보 이용자(주주)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모직 등 그룹 계열사와 외국인 투자자인 퀸타일즈뿐이었다. 그 당시로 돌아가서 살펴본다면 주주들이 이미 콜옵션 존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고의로 공시를 누락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장이다.

회사 상장 전 공시 누락에까지 고의적이었다는 혐의를 씌워 검찰에 고발한 것에 기업들은 큰 충격을 받고 있다.

기업들이 받은 충격과 별개로 이 건에 연관된 이해 당사자들은 “증선위가 묘수를 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증선위는 우선 시가총액 26조5983억원짜리 대형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 손익 정정과 상장폐지를 막아 개인투자자들이 정권에 등을 돌릴 가능성을 제거했다. 일찌감치 고의 분식을 주장한 금감원엔 퇴로를 마련해 주고, 고의성을 판단하는 부담은 검찰과 국회로 넘겼다. 증선위의 이번 결정이 “고도의 정무적 판단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기업의 회계처리에 대한 판단이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참여연대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감리는 심의 도중 여야 국회의원들의 성명이 잇따라 발표되는 등 정치적 압박이 강하게 가해졌다. 금감원이 정치권의 삼성바이오로직스 공격 논리를 감리조치안에 대폭 적용했다는 분석도 많았다.

공정한 심의를 위해 엄격하게 보호돼야 할 감리위원들의 신상 명세가 공개되는가 하면 어떤 시민단체는 결론이 나기도 전에 감리위원들을 ‘예비 피의자’로 검찰에 고발하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그룹 계열사가 아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금융감독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감원 설립 목적은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금융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금융위는 관련 법률에 따라 그 권한에 속하는 사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정무적 판단을 개입시켜 조직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훼손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계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기업들의 회계처리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잇달아 나옴에 따라 회계감리가 기업 길들이기를 위한 정권의 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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