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레일이 지난 14일 자체 암호화폐 ‘레일토큰’을 발행했다. 지난달 발생한 450억원 규모 해킹 피해를 보상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더리움 정보 제공 사이트 이더스캔에 따르면 발행된 레일토큰의 수는 1100억개에 달한다. 앞서 코인레일은 보상안을 공지하며 레일코인 발행안을 밝힌 바 있다. 보상안은 1레일토큰 가격을 0.72원으로 설정했다. 회사 보유 돈을 쓰지 않고 토큰 발행으로 피해액을 변상하는 것이다. 이번에 발행된 레일토큰 총액은 792억원에 달한다. 해킹 피해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거래소가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한 전례가 없지는 않다. 해킹 피해 보상을 위해 암호화폐를 발행한 경우도 있었다. 2016년 비트코인을 해킹당한 홍콩 거래소 비트파이넥스는 자체 암호화폐 ‘BFX’를 발행해 피해자에 지급한 뒤 거래소가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피해액을 변상한 바 있다.
비트파이넥스의 경우 피해 보상이 원활이 이행됐지만 코인레일은 상황이 다르다. 보상안을 두고 그간 잡음이 끊이지 않아 거래소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탓이다.
해킹으로 26억1954만개가 탈취된 펀디엑스(NPXS)는 재단이 거래를 일시 동결했지만 코인레일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사이 거래가 재개돼 탈취당한 물량이 시장에 매각됐다. 애스톤(ATX)은 이달 2일 재단이 보상안을 전면 철회했다. 애스톤은 코인레일이 무상지원만 요구하고 일체 협의에 응하지 않아 지원계획을 거둬들였다며 코인레일의 무책임한 대응을 비판했다. 해킹 발생 후 한 달 넘게 지났지만 트론(TRX) 스톰(STORM) 카이버(KNC) 엔퍼(NPER) 등도 복구되지 않았다.
코인레일이 공개한 레일토큰 백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백서의 내용은 본계약 체결 이후 수시로 변경될 수 있다 △발행 회사 및 회사는 백서의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회원은 레일토큰을 지급받음으로서 해킹 피해로 인하여 발생한 모든 손해를 배상받았음에 동의한다 등의 조항이 포함됐다. 레일토큰 지급으로 해킹 피해 관련한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지만 정작 레일토큰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장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레일토큰에 오류가 있어 손해를 보거나 가격이 떨어질 경우 어떠한 구제책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있다. 관련 분쟁은 홍콩국제중재센터에 맡긴다는 조항을 통해 사용자의 분쟁 제기를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한 마디로 성의도 책임감도 양심도 찾아볼 수 없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미 신뢰를 잃은 거래소를 누가 얼마나 이용할까. 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백서와 불분명한 토큰이코노미를 바탕으로 한 토큰의 수요는 얼마나 있을까. 레일토큰의 가치가 발행 가격대로 유지될 가능성은 기적이 일어날 확률에 수렴한다.
공은 피해자들에게 넘어갔다. 레일토큰으로 피해액을 100% 보상 받는 기적에 기댈지, 집단행동을 통해 홍콩국제중재센터가 아닌 대한민국 사법부에 일벌백계를 호소할지 입장을 정할 때다. 피해자들이 전자를 택할 경우 '호구'라고 표현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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