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일터 지키자"… '노사 빅딜'로 폐쇄 위기 극복한 르노 공장

입력 2018-07-16 17:33  

벼랑 끝에 선 자동차산업

임금삭감-신차배정 협상 타결
車 생산량 8만→25만대로 회복

伊, 임금·고용 유연성 높이자
피아트, 해외로 공장 이전 안해



[ 도병욱 기자 ] 2000년대 후반 글로벌 자동차 회사인 르노그룹 경영진을 가장 골치 아프게 했던 건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이었다. 공장의 생산성은 갈수록 떨어졌고, 근로자 임금은 치솟았다. 이 공장에서 만드는 차량은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한때 20만 대가 넘었던 생산량은 7만9474대(2006년)까지 떨어졌다. 회사는 공장 폐쇄를 검토했고, 노조는 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다 ‘이렇게 가면 파멸’이라는 위기의식이 생겨났다. 결국 노사는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노조는 임금 삭감을 수용했고, 회사는 신차 배정으로 화답했다. 2009년 ‘바야돌리드 대타협’이다. 바야돌리드 공장의 생산량은 이때를 기점으로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생산량은 25만2398대다.


스페인 정부와 의회도 노동개혁으로 힘을 보탰다. 의회는 3분기 연속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줄면 회사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2012년 통과시켰다. 근로자 수가 50인 이하인 사업장에는 직원을 1년만 고용하고 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시범근로제’를 도입했다. 노사가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해도 최소 물가 상승률만큼 임금이 자동으로 늘어나던 제도도 없앴다.

전방위의 노력은 자동차산업 부흥으로 이어졌다. 폭스바겐과 다임러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앞다퉈 스페인 공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포드도 발렌시아 공장을 유럽 최대 생산기지로 만들겠다며 2020년까지 23억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인의 자동차 생산량은 2012년 198만 대에서 지난해 285만 대로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은 456만 대에서 411만 대로 줄었다. 한때는 양국의 생산량이 두 배 넘게 차이 났지만, 올 1분기(1~3월)에는 23만 대로 간극이 바짝 좁혀졌다. 몇 년 뒤면 생산량이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탈리아도 2012~2014년 노동 관련 법을 개정했다. 법원이 기업의 경영상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해도 해당 기업이 근로자를 복직시키지 않아도 되는 법을 만들었다. 기업은 12~24개월치 임금만 보상금으로 지급하면 된다.

해고 절차도 간소화했다. 객관적 사유에 의한 해고라면 노동법원의 심리를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절차를 바꿨다. 노사협력도 동반됐다.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의 노조는 2011년과 2014년 임금 인상 제한 및 파업 자제에 동의했다. 노조의 태도가 바뀌자 한때 자국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계획까지 세웠던 피아트는 자국 생산량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생산량은 2012년 39만 대에서 지난해 94만 대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고용 및 임금 유연성을 중심으로 한 노동개혁을 단행해 자동차산업을 재건했다”며 “한국도 이들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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