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 설화 ‘콩쥐팥쥐’와 유럽의 ‘신데렐라’를 보면 이야기 구조가 놀랍도록 빼닮았다. 계모 구박, 못된 이복자매, 신발 한짝 분실, 동물들의 도움, 해피 엔딩…. 그렇다면 어떤 게 모작(模作)일까.
주경철 서울대 교수의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기록물은 9세기 중국 당나라 때의 ‘섭한(葉限)’ 이야기다. 유사 설화가 유럽에서만 500여 종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1000종이 넘는다. 이야기 분포를 지도에 그려보면 유라시아 대륙에 띠를 이룬다. 실크로드를 오간 낙타짐 속엔 이야기 보따리도 들어 있었던 셈이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9세기 신라 경문왕의 ‘당나귀 귀’ 설화도 로마제국에 닮은꼴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하나인 오비디우스(BC 43~AD 17)의 《변신이야기》에서 미다스왕이 아폴로신의 노여움을 사 귀가 당나귀처럼 늘어났다. 이렇듯 고대 동서양의 교류는 상상 이상이다.
‘신데렐라’만큼 곳곳에서 발견되는 설화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다. 나무꾼이 옷을 훔친 선녀와 아이를 낳고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뼈대로 다양한 뒷얘기가 따라붙는다. 공광철 씨의 부경대 박사논문에 따르면 유사 설화가 북방민족, 시베리아, 중국, 티베트, 윈난, 일본, 인도 등에 두루 분포한다. 선녀 대신 백조로 변주된 이야기도 많다. 유럽에는 백조 모습을 한 발키리처럼 ‘백조처녀 전설’이 있다.
이 설화는 바이칼호 인근의 몽골계 부랴트족과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의 건국신화이기도 하다. 천녀(天女)가 목욕할 때 깃옷을 훔쳐간 사냥꾼과 함께 살면서 낳은 아이들 중 하늘로 데려가지 못한 한 아이가 건국시조란 것이다. 나무꾼 대신 유목민답게 사냥꾼이 등장할 뿐이다. 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과 빼닮은 이야기가 배경만 바이칼호로 바뀌어 전해진다.
전래 설화들은 풍성한 스토리텔링의 원형(原型)이자 동서 문명 교류의 소중한 증거다. 인간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희로애락을 담아, 세월이 흘러도 긴 생명력을 갖는다. 요즘 영화·드라마도 플롯을 뜯어보면 설화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한 포럼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나무꾼은 성폭행범이자 여성 납치범이 될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다. 성평등과 페미니즘 지지 차원의 발언이겠지만 비유가 적절치 못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전래이야기를 재해석하고 변주할 수도 있다. 흥부는 무능력하고 무계획한 가장이지만 초저출산 시대에는 달리 볼 여지도 있다. ‘슈렉’은 공주가 바비인형 같아야 한다는 환상을 비틀어 유쾌한 공감을 유발했다. 그러나 장관이 정색하고 나무꾼을 몰아세운 것은 지나쳤다.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을 아이들에게 읽히지 말아야 하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