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데스 밸리' 넘은 중국 재활로봇산업

입력 2018-07-16 18:58  

韓 기술·여건 부러워하던 中 재활로봇
최근 국제전시회서 세계 수준 제품 내놔
국내선 규제에 발목잡혀 제품화 포기

방문석 < 서울대의대 교수·재활의학 >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장애를 줄이기 위해 지식을 나누자’라는 슬로건으로 세계재활의학회가 열렸다. 다른 의학 관련 세계학회가 그렇듯이 워크숍 및 세미나, 특강, 각종 회의 못지않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관련 제품의 전시다. 제약사와 의료기기 제조사의 신제품 전시는 향후 세계 재활의료시장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최근 몇 년간 이 학회의 전시에서 화제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분야가 재활 로봇이다. 몇 년 전 전시에서는 이스라엘 회사와 미국 회사가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걷게 하는 웨어러블 로봇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가장 큰 화두였다. 제조사 후원을 받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들이 로봇을 입고 전시장을 걷는 시범을 경쟁적으로 보이면 참석자들이 몰려와 비교하고 질문을 했다. 영국의 한 장애인은 수일에 걸쳐 마라톤 풀코스를 로봇을 입고 완주해 화제가 됐다. 중형 자동차 가격의 로봇이 언제쯤 대량 생산돼 싸질 수 있을지, 일본 제품은 요양보험의 지원을 받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든지 등 경제성에 대한 논의도 뜨거웠다. 원천 기술에서 자동차산업 후원을 받아 개발된 제품, 인명 살상용 군용 기술을 응용해 개발된 재활로봇 등도 관심을 모았다.

올해 세계재활의학회 의료기기 전시장에서는 앞선 이스라엘 및 미국 제품과 나란히 전시된 보행 로봇이 여럿 등장했다. 미국에서 개발된 또 다른 제품이 눈에 띄었고, 필자가 익히 알던 일본 제품도 일본 내 상용화를 완료해 새로 전시됐다. 그런데 이전에 보지 못한 제품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외양만 봐서는 기존 제품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디자인도 훌륭하고 성능도 우수했다. 중국에서 개발된 웨어러블 보행용 재활로봇이었다.

7, 8년 전만 해도 재활 로봇 분야에서 한국의 공학적인 개발 기술력과 의학적인 임상시험 능력이 뒤지지 않고, 시제품 연구도 많이 이뤄지고 관련 연구비도 확충돼 언젠가는 선진국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일본이 주춤하고 있던 인허가 관련 임상 및 중개 연구를 우리가 막 시작한다고 선언하고 연구비도 지원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당시 도요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관련 제품을 연구하던 일본 교수에게 “한국이 일단 시작하면 속도는 더 빠를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었다. 그 일본 교수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 시장 진출을 위한 임상·중개 연구를 한국에서 하는 것이 더 빠를 수 있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일본은 시스템적으로 움직임이 너무 신중하고 느려 한국처럼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당시 중국은 국제 특허와 인허가를 신경쓰지 않고 복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 시장에서만 판매해도 경제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제작사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먼저 국제적인 허가 기준에 맞는 임상·중개 연구를 준비하는 나라였고, 일본과 중국 의학자의 부러움을 받던 나라였다.

그사이 국내에서도 끊임없이 재활로봇의 개발 연구부터 시제품 개발, 중개연구, 제품 보급사업을 위한 구매까지 지원 사업이 매년 이뤄져 왔다. 하지만 국내 의료기기 인허가를 거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까지 획득해 이른바 ‘데스 밸리(death valley: 벤처기업이 연구개발에 성공한 뒤에도 제품화를 위한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맞는 도산 위기)’를 넘어 제품화에 성공한 제조사 및 제품은 거의 없다. 국내 한 개발사는 대학병원에서 의료용 재활 로봇으로 허가받을 수 있도록 임상 연구를 지원해도 국제적 인허가는커녕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도 버겁다며 제품화를 포기했다.

우리가 몇 년 전만 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던 중국 재활로봇산업이 데스 밸리를 넘고 있다. 정확하고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인허가 문제점과 의료수가 문제 등의 원인을 언제까지 분석만 하고 있을 것인가. 제품화도 못할 여건에서 언제까지 소규모 연구개발비만 형식적으로 쓰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국내 재활병원에서 국산품은커녕 미국과 유럽 제품을 밀어내는 값싼 중국 재활로봇들이 가득한 상황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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