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서 봉사하며 정년 보내고 싶다" 여수법원 지원
'전임 시·군 판사' 활성화 될까?
3000만원 이하 소액사건 다뤄
원로 법조인 경륜 활용 취지
현재 7명…2010년 이후 임용 없어
법조계 "전관예우 우려 해소
국민에 고품질 재판 제공" 환영
[ 신연수 기자 ] 사법부의 정점에서 내려와 ‘시골 판사’가 되겠다고 나선 이례적인 법조인이 등장했다. 대법원 대법관 퇴임 후 고향의 시·군법원 판사로 임용되기 위해 스스로 법원행정처를 찾아간 박보영 전 대법관(57·사법연수원 16기·사진) 얘기다. 국내 최초로 대법관 출신의 시·군법원 판사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며 전관예우 문제를 해결하고 판사들에게 ‘아름다운 은퇴’의 모범이 될 수 있을지 법조계 안팎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고향에서 봉사하며 정년까지 보낼 것”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전 대법관은 최근 법원행정처에 전남 여수시 시·군법원 판사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위급 판사인 대법관 출신이 시·군법원 판사로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대법관의 이 같은 결정은 노후를 고향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법관 측근은 “대법관이 되기 전부터 여러 공익활동에 관심이 많았다”며 “고향인 전남 순천 인근에서 원로법관으로서 정년(만 65세)까지 남은 몇 년을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을 주변에 밝혀왔다”고 전했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1월 대법관 퇴임 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민사실무연습’을 가르쳤다. 이 측근은 “아마 최종 결정되면 겸직을 피하기 위해 학교는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시·군법원은 중소도시나 군지역에 설치돼 소송가액 3000만원 이하의 소액사건과 화해 및 조정사건 등을 다루는 소규모 법원이다. 전국에 100개소가 설치돼 있다. 지난해 전국 시·군법원에서 처리한 소액사건 수는 5만7123건으로 전체 1심 법원에서 다룬 민사사건의 5%가 넘는다. 박 전 대법관이 근무 의사를 밝힌 여수시법원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관할이다.
◆전임 시·군법원 판사, 전관예우 해결 기대
박 전 대법관의 지원을 계기로 사실상 ‘스톱’ 상태였던 전임 시·군법원 판사 제도가 활기를 띨지 주목된다. 법원은 1995년부터 전임 시·군법원 판사를 임용해왔다. 서민 생활과 밀접한 사건을 주로 다루는 시·군법원에서 조정 능력이 탁월한 원로 법조인의 지식과 경륜을 충분히 활용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2010년 임용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임용을 멈춰 현재 활동 중인 전임 시·군법원 판사는 전국에 7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의 해법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법조계 고위관계자는 “1년에 170여 건을 수임하는 전직 대법관 등 고액 수임료로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은퇴 법관이 많다”며 “원로 법조인들이 법원에서 봉사할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되면 전관예우 문제를 해결하고 사법 신뢰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박 전 대법관 사례를 계기로 미국식 ‘시니어 법관’ 제도가 국내에 정착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시니어 법관은 65세 이상의 연방 판사가 법관 신분을 유지하면서 재판 업무와 사법부 자문, 외부 봉사활동 등을 맡는다. 미국 최초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도 시니어 법관으로 활동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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