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효주 기자 ] 차가 없는 ‘뚜벅이 기자’에게는 신발이 늘 고민거리입니다. 노트북과 카메라 등 여러 ‘장비’의 무게를 합치면 거의 10㎏ 남짓. 돌아다닐 일이 많은 직업이라 편안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생존 본능과 “그래도 예뻤으면 좋겠다”는 미적 본능이 늘 마음속에서 다투곤 합니다. 몇 번은 하이힐에도 도전해 봤습니다. 집 나와서 10분 만에 후회했지요. 만원 지하철과 만원 버스에서 하이힐을 신는다는 건, 아마 이번 생에 다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운동화를 신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정장 차림을 하는 날에는 내 모습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선택한 건 로퍼(loafer)입니다. 캐주얼한 청바지 차림이나 정장 치마에나 두루두루 어울리는 게 맘에 쏙 들었습니다. 굽이 낮아 오래 걸어도 발에 큰 무리가 없었지요. 그때부터 신발 브랜드 매장마다 떠돌며 내 발에 맞는 로퍼를 찾아 나섰습니다. 수많은 로퍼 중 하나를 찾는 건 ‘신데렐라의 구두’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인조가죽으로 만든 제품은 뒤축이 뻣뻣했고, 통굽이 들어간 제품은 굽이 낮더라도 발바닥 전체에 무리가 갔지요.
마치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유리구두를 찾아 나서듯, 한 달 동안 헤맨 결과 수제화 ‘쿠에른’(사진)을 만났습니다. 한 백화점의 잡화 코너에서 마주친 녀석이었죠. 부들부들한 가죽은 발을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옅은 겨자색부터 짙은 단풍색, 아이보리색 등 자연에서 뽑아낸 듯한 은은한 색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10여 종의 색상이 있어 선택지도 다양했습니다. 드라이빙 슈즈에서 착안한 낮은 굽, 쿠에른만의 폭신한 인솔이 ‘부담 없이 막 신어도 괜찮다’고 안심시켜주는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쿠에른은 직장인 사이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편한 신발로 유명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에서 건너온 천연가죽으로 만들어 품질도 챙기면서, 가격은 10만원 중반이라 입소문이 나 있었죠. 저 같은 뚜벅이 직장인뿐 아니라 장시간 운전하는 사람들도, 발이 자주 붓는 임산부 사이에서도 쿠에른의 로퍼와 드라이빙 슈즈는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토종 브랜드 쿠에른은 2015년 서울 창덕궁 인근에 매장을 연 뒤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에도 정식 매장을 냈습니다. 팝업스토어를 연 뒤 입소문으로 인기가 높아지자 백화점까지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쿠에른을 만든 강경미 대표는 “무지외반증으로 고생하던 내 경험을 살려 누가 신어도 편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가죽신을 만들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노트북에 책까지 10㎏ 무게의 백팩을 지고 다니는 제가 오랜만에 만족하는 신발입니다. 지금 신고 있는 제품 밑창이 다 닳을 즈음엔 어떤 디자인으로 살지, 벌써 새 신발을 고르고 있습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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