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드림 좇던 길 끝의… '동화 속 파티장' 눈부시고

입력 2018-07-22 14:57  

여행의 향기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이 추천하는 여행지 - 미국 로스앤젤레스

청춘의 샘솟는 에너지 가득찬 '그라피티 해변' 심장 뛰네



10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하늘을 걷던 두 발이 이곳 땅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공항 문을 나오면 반짝이며 쏟아지는 햇빛에 기지개를 켜고 나도 모르게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시게 되는 곳. 1년 365일이 눈부신 이곳은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A)’다. 로스앤젤레스는 광활한 태평양을 마주한 ‘무역의 창’이자 세계를 뒤흔드는 문화의 중심지다. 태평양의 현관인 만큼 수많은 민족이 어우러져 새로운 색을 창조해내는 이곳은 할리우드와 디즈니랜드, 베벌리힐스 등 수많은 볼거리로 사랑받는 미국의 대표도시다. 로스앤젤레스는 18세기 말 스페인 탐험가의 발견을 시작으로 멕시코 신부와 사람들이 이주하며 ‘우리 천사들의 여왕의 광장(El pueblo de Nuestra Senola la Reina de Los Angles de Porciuncula)’이라 불려왔다. 그 이후로 스페인과 멕시코의 지배를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됐고, 긴 이름을 줄여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가 된 것이다.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섞여 새로운 색을 창조해내는 이곳 로스앤젤레스는 어떤 모습일까. 2018년을 살고 있는 LA가 궁금해졌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이은비 부사무장 eblee135h@flyasiana.com


가장 완벽한 피크닉, 샌타모니카

그 어느 계절보다 눈부신 게 여름의 바다인데 이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태평양 바다의 아름다움은 오죽할까. 오늘 나의 목적지는 태평양을 허리춤에 끼우고 걷는 길이다. 로스앤젤레스 지도의 남서부 바닷가를 따라 뻗은 샌타모니카(Santa Monica) 해변에서 여행의 첫 발걸음을 뗐다.

샌타모니카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다. 다운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해변으로 간식거리 하나 들고 자리 잡으면 완벽한 피크닉이 되고, 주말이면 눈과 귀가 즐거운 공연들로 가득 차는 곳.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이른 아침부터 여유로운 햇살을 즐기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해변가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모래알 섞인 산책로를 걷다 보니 어느새 거추장스러운 샌들은 내 두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쉬고 있고, 두 발은 모래에 빠질 듯 혹은 잡을 듯하며 가장 평온한 비틀거림으로 걷고 있다. 멍하니 앉아 바라만 봐도 마음이 가득해지는 바다를 마주하고 두런두런 담요 하나 펼쳐 앉은 젊은 부부와 아기, 서로를 베개 삼아 책 읽는 연인들, 태닝하며 달콤한 낮잠에 빠진 사람들.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다시금 고개 들어 키 큰 야자수와 하늘에 번갈아가며 포커스를 맞추게 하는 곳.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샌타모니카였다.

샌타모니카의 진짜 보석, 샌타모니카 피어

관광안내 책자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누구든 샌타모니카 해변을 걷다 보면 저 멀리 보이는 알록달록한 관람차를 향해 이끌리듯 걷게 될 것이다. 잔잔하던 샌타모니카의 바닷소리가 왁자지껄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바뀌고 그림같이 멈춰 있던 세상이 온갖 색과 표정을 지닌 공간으로 변화한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샌타모니카의 동화 속 파티장, 샌타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다.

바다의 수평선을 가로질러 세워진 나무교각과 그 위 나무판자를 깔아 만든 총길이 488m에 달하는 바다 위의 파라다이스. 입구부터 신기하고 아기자기한 이곳의 상징물들로 가득 찬 선물가게와 주인들의 재능과 상상력에 반하게 하는 각종 노점, 영화 속에서 본 듯한 풍경들이 즐비한 이곳은 분명 딴 세상이었다. 길거리 음악가들은 동그랗게 사람들을 모아 세우고 팁보다는 공연료를 내야 할 것 같은 훌륭한 공연을 펼친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손발은 흥에 취해 허공에 드럼을 치고 나무 바닥을 악기 삼아 발을 구른다. 소리는 없지만 행복한 노래임이 틀림없다. 어린 손녀의 손을 잡고 나온 백발노인의 눈도 호기심과 천진난만함으로 반짝인다. 바다 위 놀이공원인 퍼시픽파크(Pacific Park)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온갖 색깔로 가득 찬 이곳은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돌아간 듯한 설렘을 준다. 밤이면 아름답기로 소문난 일몰과 더불어 까만 배경 속에 반짝이는 퍼시픽파크도 큰 볼거리라 하니 밤의 샌타모니카도 궁금해진다.

아이스크림 하나 손에 쥐고 어린아이가 된 듯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사진을 찍는 게 보인다. 66번국도(Route66). 상점들에서도 많이 보이던 이 표지판은 미국 동부 시카고에서 시작해 이곳 샌타모니카 절벽에서 끝나는 총길이 3945㎞의 미국 최초 대륙 횡단 도로의 종착지를 의미한다. 국도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이 횡단 도로가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에게 추앙받는 데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과거 경제공황, 기후변화 등으로 흉년의 연속이던 1930년대 가난한 미국인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 오직 희망을 찾아 오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많은 미국인들의 꿈은 이 길의 끝인 ‘햇살 머금은 도시, 캘리포니아’에서 현실이 됐다. ‘어머니의 넉넉한 품’이란 뜻의 ‘마더로드’라 불리며 이 길은 여전히 이들의 안식처이고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이 되는 곳으로 반짝이고 있다.

나무 바닥 위를 걸을 때 나는 타닥타닥 소리에 매료돼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부두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다시금 내가 바다 위에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눈앞에 반짝이는 바다가 펼쳐졌다. 사람들의 손때가 탄 낮은 울타리에 살짝 기대 바다 냄새와 햇살로 여유를 부려본다. 누구라도 지금을 행복이라고 느끼게 하는 순간. 샌타모니카 해변 위의 갈매기들은 그저 평온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열정이 예술이 되는 곳, 베니스비치

휴대폰 지도로 목적지에 가까워짐을 확인하기도 전에 베니스 해변(Venice Beach)에 다다랐음을 달라진 공기로 먼저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한 그라피티로 뒤덮인 건물들은 7월의 햇빛만큼이나 뜨거운 붉은색을 입고 있었다. 바다의 푸른색을 끼얹은 듯한 건물은 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물고기처럼 피해 다니며 묘기를 부리는 얄미운 소년도 결국은 내게서 감탄의 박수를 받아냈다. 길거리에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변변치 못한 바닥에 진열되고서도 그 가치를 확실히 뽐내고 있었다. 베니스 해변의 상징과도 같은 오션 프런트 워크(ocean front walk)를 걸었다. 오션 프런트 워크의 끝에 다다랐을 때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둘러본 풍경은 감격스러울 만큼 맑았다. 뜨거운 오후 2시의 베니스 해변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싱그럽다 못해 눈부신 잔디로 내 시야에 한 가득 들어찼다. 마치 베니스 해변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밤새 입김을 불어 옷깃으로 닦고 또 닦은 것처럼 투명하다.


잠시 행복에 겨워 멍하니 바다를 보던 중 시멘트바닥을 미끄러지는 둔탁하고 뜨거운 마찰음이 직선과 곡선을 그으며 흩어졌다. 해변에 있는 스케이트보드 연습공간에서 나는 소리였다. 작은 나무 판자 위에 자신을 맡긴 젊은이들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보드 위의 예술가들은 무릎의 상처쯤은 전혀 두렵지 않은 듯 가파른 조형물을 넘어 날아올랐다.

저 멀리 서퍼들은 끝도 없이 펼쳐진 태평양 바다 위를 활보하는 전사가 되어 파도를 지휘한다. 함께 숨쉬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곳. 베니스 해변의 진짜 매력은 눈이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만 한다.

오늘의 LA를 만나다, 애벗키니

1905년 미국의 대부호 애벗 키니(Abbot Kinney)는 LA에 이탈리아 베니스(베네치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4개의 수로로 이뤄진 작은 운하를 만들고 베니스풍 주택들을 지어 이곳을 베니스커낼(Venice Canal)이라 이름 붙였다. 교통수단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베니스처럼 곤돌라를 운용하며 LA 속 작은 베니스를 재현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고급주택가와 잘 정비된 예쁜 마을로 LA의 작은 명물이 됐다. 지금은 베니스 해변을 둘러본 관광객들에게 한 템포 쉬어가는 산책로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해변가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애벗키니’가 펼쳐진다. 베니스 해변의 화려함을 경험했다면 애벗키니의 감성을 느끼러 가보자.


애벗키니 거리는 LA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좁은 도로를 끼고 펼쳐진 야자수 나무 아래로 오밀조밀 낮은 건물들이 늘어선 이 거리는 자유와 낭만이 가득하다. 베니스 해변의 예술가들이 각자의 색을 담아 모이기 시작한 이 거리는 독특하고 빈티지한 상점들과 감각적인 거리예술로 가득 찼다. 길거리 시멘트 벽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표현한 벽화로 야외 전시장을 만들었다. 그 중 유명한 몇몇의 벽화 앞에는 관광객들이 눈치껏 줄을 서 사진을 찍는 진풍경도 만날 수 있었다. 분위기 때문일까? 나란히 세워진 자전거 몇 대의 정갈함마저 사랑스럽다.

애벗키니 거리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맛’이다. 커피 마니아라면 반가워할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와 ‘블루보틀(blue bottle)’은 역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저 커피 맛이 좋아 오는 사람들은 물론 독특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에 반해 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커피를 주문하기도 전부터 마음에 담아둔 그늘진 야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행복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커피를 사러 간 주인이 가로수에 묶어둔 덩치 큰 개도 햇살이 좋은지 얌전히 앉아 꼬리를 흔든다. 커피뿐만 아니라 소금맛 아이스크림인 솔트앤드스트로나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도넛이라 불리는 블루스타도넛 등도 만날 수 있다. 매월 첫째주 금요일에는 LA에서 가장 맛있다는 푸드트럭 이벤트가 열린다고 하니 이 또한 놓치기 아깝다.

뜨겁던 태양이 살짝 비켜서고 그 눈부시던 LA의 하늘이 짙푸른 빛을 품었다. 똑같은 태평양을 끌어안은 LA의 해변이지만 그 둘은 분명 다른 색깔이었다. 샌타모니카의 해변에서 순수한 어린아이가 돼보고 베니스 해변에서 열정의 두근거림을 맛본 하루가 야자수의 머리 위로 느릿느릿 넘어간다.


여행정보

아시아나항공은 인천~LA 구간을 매일 하루 두 편 운항하고 있다. 샌타모니카로 가는 방법은 택시가 가장 보편화돼 있다. 지하철을 탈 때는 다운타운 샌타모니카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샌타모니카에서 베니스비치까지는 도보로 갈 수 있으며 샌타모니카 정류장에 모여 있는 자전거 렌털숍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는 것도 좋다. 자전거의 하루 렌털비용은 평균 40~45달러, 1시간 15달러, 2시간 30달러다. 밤의 베니스비치는 위험할 수 있으니 낮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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