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고령사회와 하류(下流)노인

입력 2018-07-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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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논설위원


‘시간의 흐름’보다 세상에 더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시간을 당할 자 아무도 없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잡아보겠다던 진시황은 불로장생약이라 믿은 수은에 중독돼 사망했다.

청춘의 푸르름과 비교할 때 노년의 잿빛은 더 도드라진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영화 ‘은교’ 속 명대사 그대로다. 열정적이고 성공적인 젊음을 보내도 힘겨운 노년의 삶을 피할 수는 없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격을 지키는 ‘아름다운 황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물론 늙음은 지혜이기도 하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나는 이번 선거전에서 나이를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상대가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점을 공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는 재치 있는 TV 토론으로 역대 최고령인 73세에 재선됐다.

하지만 레이건의 유머가 통하던 시절도 이미 30여 년 전이다. 지금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41), 제바스티안 크루츠 오스트리아 총리(32) 등 30~40대 지도자가 유럽에만 10여 명이다. 기술이 오감을 넘어 인간을 미지의 신세계로 안내하는 시대다. 누구나 손바닥 안에서 전 세계의 거리를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다.

노인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빈곤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로 꼽힌다. 자산(주로 부동산)이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자녀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점이 감안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은 통계이긴 하다.

그래도 ‘폐지 줍는 노인’이 낯설지 않을 만큼 노인들의 경제적 문제는 만만치 않다.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31%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일하는 노인 10명 중 4명은 수입이 최저임금을 밑돈다.

이런 문제에서 이웃 일본은 항상 반면교사다. 일본에선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과로노인’이라는 말이 일반화돼 있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다. 자신이나 배우자, 자녀의 질병 등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면서 자산이 어디론가 블랙홀처럼 빠져나가고 말았다는 증언이 공통적이다. 은퇴 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넘치다보니 몇년 전부터 ‘하류노인’이라는 신조어도 유행하고있다.

통장 잔액이 많다고 하류노인의 위험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 단절에 따른 사회적 고립이 더 큰 적이다. 여기에다 광장 젊은이들의 목소리만 확대되는 수상한 시절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구절을 곱씹는 어르신들이 많을 듯싶다. “일생의 일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는 행복을 찾을 필요도 없다”고 한 칼라일의 말이 위로가 될까.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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