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는 국방부의 내부 문건이 발견되면서 군·검 합동수사기구의 수사 칼끝이 한 전 장관을 겨누게 됐다.
지금까지 한 전 장관 측은 기무사 작성 계엄 문건이 내부 검토자료였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기무사 계엄 문건 작성 한 달 후에 계엄사령관을 육군총장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단순 내부검토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전 장관의 지시는 계엄 실행 여부를 떠나 최소한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문건을 국방부와 합참의 계엄업무 지침에 적용을 시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에서 육군총장으로 변경해 언제든 계엄수행 임무에 육군을 투입할 수 있도록 계엄시행 체계 정비를 계획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이 때문에 군·검 합동수사기구에서 한 전 장관이 왜 계엄사령관을 육군총장으로 변경을 시도했는지에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전 장관은 작년 4월 19일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의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계엄사령관을 육군총장으로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시는 작년 3월 기무사가 계엄 문건을 작성한 그 다음 달에 이뤄진 것이다.
기무사 작성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에도 "계엄사령관은 육군총장을 임명"이라고 되어 있다. 한 전 장관이 기무사 문건을 보고받는 데 그치지 않고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와 인식을 같이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계엄 업무는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 소관이 아니라 '계엄과'를 두고 2년마다 계엄실무편람을 펴내는 합참의 고유 권한인데도 국방부를 통해 계엄사령관 변경을 시도한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기무사가 계엄사령관을 육군총장으로 내세운 데 대해 의혹만 제기됐는데 국방부 문건이 이를 규명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계엄 문건 작성 당시 군부와 정권 지휘부에 육사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관생도 시절부터 야전 생활까지 끈끈한 정을 쌓아온 육사 출신들이 '의기투합'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특별수사단이 밝혀내야 할 수사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3월 문건 작성 당시 군 지휘부는 조현천(육사 38기) 기무사령관, 한민구(육사 31기) 국방장관 등이다. 아울러 계엄임무 수행의 중추적 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는 구홍모(육사 40기) 사령관, 특수전사령부는 조종설(육사 41기) 사령관 등이다.
청와대에선 김관진(육사 28기) 국가안보실장, 박흥렬(육사 28기) 경호실장이었다.
이에 반해 계엄 매뉴얼에 따라 계엄사령관을 맡는 합참의장은 이순진 육군3사관학교 14기 출신이었다. 하필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내세우려 했던 것이 비육사 출신을 배제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물론 현행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성 중 국방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육군총장도 계엄사령관이 될 수는 있다.
군 관계자는 "육군총장은 부대를 움직일 수 있는 군령권이 없기 때문에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는다. 만약 육군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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