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부터 천경자·황주리까지… 한국 여성미술 100년 '한눈에'

입력 2018-07-23 18:01   수정 2018-07-24 13:41

양평군립미술관서 9월2일까지 '여성미술'展


[ 김경갑 기자 ]
경기 수원에서 태어난 나혜석(1896~1946)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다. 1913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난 그는 여자유학생 학우회 잡지인 ‘여자계’ 발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근대 여성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1923년 고려미술회를 설립해 한국 미술 발전에 공헌했다. 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 맞서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하는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나혜석을 비롯해 백남순, 이성자, 박을복, 천경자, 이숙자, 황주리 등 쟁쟁한 한국 여성미술가들의 예술과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경기 양평읍 양평군립미술관에서 9월2일까지 열리는 ‘2018 오늘의 여성미술’전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탄탄한 화력(畵力)을 쌓아온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여성미술의 100년 발전 과정을 한눈에 짚어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장에는 국내외에서 폭넓은 활동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선보여온 여성작가 36명의 회화, 한국화, 조각, 설치 작품 100여 점이 자리한다. 나혜석이 파리에 체류한 시절 제작한 ‘자화상’(1928)은 근대 개화기 여성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어두운 바탕에 부드럽고 섬세하기보다 억센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게 흥미롭다. “여자는 작다. 그러나 크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강하다”고 했던 그의 말이 색채미학으로 배어나온다.

2015년 7월 K옥션 경매에서 8억6000만원에 낙찰된 천경자의 대표적 자화상 ‘막은 내리고’(1989)도 관람객을 맞는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두 여인의 얼굴을 노란색과 녹색을 사용해 드라마틱하게 잡아냈다. 여인의 고독과 애틋한 사랑,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이국에 대한 동경, 자신을 지탱하려는 나르시시즘 등이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색채미학으로 승화한 이숙자의 누드 작품 ‘이브의 보리밭’도 눈길을 끈다. 보리밭에 앉아 있는 벌거벗은 여성을 통해 한국 여인의 내면을 풀어냈다. 여성의 숨결을 색채와 행위예술로 불사른 정강자, 한국화의 조형적 미감을 선구적으로 실현한 박래현, 젊은 시절 파리로 건너가 한국 여성 미술의 세계화를 일구어낸 이성자, 한국 현대 조각의 선구자이며 최초 여성 조각가인 김정숙과 윤영자의 작품에서는 장르와 매체를 뛰어넘는 대담한 시도가 엿보인다.

제정자, 석난희, 조문자, 이정지, 원문자, 송수련, 홍정희, 김춘옥, 차명희, 송인헌, 황주리, 홍순주의 그림들은 유행과 현상을 쫓아다니기보다 예술의 본질을 향해 심도 있는 작업을 하는 여성작가들의 열정을 진실하게 보여준다.

이형옥 양평군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역사적 격동기에 젊은 시기를 보내고 현재도 여전히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근대 활동한 작고 작가들과 함께 전시해 한국 현대미술의 양식 변화와 흐름을 비교할 수 있게 꾸몄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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