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전원주택과 새끼 고양이

입력 2018-07-23 19:07  

성명기 < 여의시스템 대표·이노비즈협회장 smk@yoisys.com >


지난해 가랑비가 내리던 늦가을 주말 저녁 고양이 울음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아내에게 짐승 우는 소리가 난다고 했다. 아내는 숲 쪽으로 가 보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그만 새끼 길고양이가 있었다고 했다. 어릴 때 큰 개에게 물린 뒤 동물을 무서워하는 아내는 기겁하고선 돌아와 정원 일을 계속했는데, 아들이 이야기를 듣고는 고양이를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집 테라스 아래에 뒀다고 했다. 아내가 “어미가 데려갈 테니까 그 자리에 두라”고 했는데도 아들은 “차가운 가을비에 그냥 두면 죽는다”며 박스에 담아 우산을 씌워 뒀다고 했다.

마당에 나가 보니 태어난 지 1주일도 안 된 새끼 고양이가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울고 있었다. 빌빌거리는 모습으로 보니 그냥 뒀다가는 밤을 못 넘기고 황천길로 갈 게 뻔했다. 아들에게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건강 진단을 받은 후 분유와 젖병을 사오게 했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은 신이 나서 갔다 오더니 고양이 건강은 괜찮다는 수의사 이야기를 전했다. 아들과 내가 새끼 고양이를 잘 돌봐 줬다. 고양이는 2~3일 지나서는 제법 팔팔해졌고 우는 소리도 점점 커져 갔다.

스티로폼 박스에 둬도 어미가 데려가지 않기에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올렸다. 좌우 눈 색깔이 비대칭인 예쁜 녀석이었기에 한 시간 만에 무료 입양됐다.

이틀 후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또 다른 새끼 고양이가 정원 옆에 버려져 있었다. 이 녀석은 눈병이 났는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어미가 새끼를 숲속에 버리지 않고 정원 경계선에 버린 것도 어쩌면 인간이 병든 새끼를 챙겨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나 싶었다. 고양이 어미의 영악함에 탄복이 절로 나왔다.

이 녀석도 먼저 버림받은 형제가 있던 그 박스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아 제대로 울지도 않고 귀퉁이에 조용히 처박혀 있는 것이 죽기 십상이다 싶었다. 이틀 동안 분유를 열심히 먹였고 다시 집 앞마당은 새끼 고양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눈병 치료차 오래된 연고를 찾아 발라주고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눈을 바로 뜨고는 스티로폼 박스를 탈출해 온 마당을 기어 다녔다. 마침 동네 아줌마가 키우던 고양이가 얼마 전에 죽어 상심하고 있다기에 연락했더니 바로 와서 가지고 갔다.

두 마리의 생명을 살리느라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들어갔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산 아래 주택에 살면서 생명 사랑을 느끼는 기회를 종종 갖게 되니 전원주택 생활에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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