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노동자 위한 시장의 문만 닫아 걸었을 뿐
노동 문제엔 간섭 말고 시장의 자유 되돌려 줘야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자유철학아카데미 원장 >
훗날 사가(史家)들이 좌파 정권에 관한 경제사를 쓴다면 어떻게 쓸까? 틀림없이 최저임금제도가 첫 번째 주제가 될 것이다. 그만큼 최저임금제도는 현 정권의 얼굴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서민을 위한 ‘우유 반값’ 사건이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듯, 노동자 소득 증대를 위해서라는 현 정권의 최저임금 인상은 이른바 ‘촛불혁명’의 상징인 듯하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야기된 고용 하락, 물가 인상, 자영업의 몰락 그리고 소득불평등 심화 등 경제 문제들이 심각하다. 최저임금 지급을 감당하기 어려운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반발도 거세다. 그럼에도 좌파 정권은 최저임금제를 철회할 기미가 없다. 최저임금제가 그토록 귀중하고 신성한가? 이 제도의 바탕은 놀랍게도 미국 역사에서 온갖 못된 짓을 자행한 20세기 초반 ‘진보시대’의 우생학(優生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생학은 부적합하고 열등한 인간을 거세(去勢)할 것을 강조하며, 인적 또는 인종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존엄·자유·평등의 자유주의 가치에 비춰보면 이 이념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한가! 경제력 집중 억제, 뉴딜·복지정책 등 좌파 정책을 주도했던 미국의 진보경제학자들은 생산성과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필연적으로 미숙련 노동자, 부녀자, 이민자의 일자리 상실을 야기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생학을 접목한 좌파는 그런 사람들은 고용한들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제 밥벌이도 못하는 사람들을 ‘거세하는’ 제도가 필요한데 그것이 최저임금제라고 환호했다. 인종차별과 이주민 취업제한을 위해서도 최저임금제도가 적합하다고 여겼다. 누구에게나 낮은 노임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자유를 허용할 경우 유능한 노동자의 노임까지 깎아내리는 결과가 초래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불리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시장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복지국가 이상과 케인스주의를 배출한 영국의 페이비언 사회주의도 우생학적으로 최저임금제를 정당화했다. 그런 제도로 야기되는 실업은 사회의 질병이 아니라 건강한 경제의 상징이라고 맞장구쳤다. 최저임금제도 때문에 낙오된 사람들은 사회에 빌붙어 먹고사는 ‘기생충’이라고 혹평했다.
진보주의가 이 잔인한 우생학을 용이하게 수용할 수 있었던 건 국가는 사회의 모든 악을 치료할 만능이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진보까지도 담보할 능력이 있다는 우생학의 지적 자만 때문이었다. 진보경제학자들은 보통 사람의 정신은 국가를 통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인간이란 국가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우생학이 히틀러의 나치즘과 연관되면서 좌파의 우생학 운동의 잔혹한 짓은 사라졌지만 최저임금은 취약근로계층을 시장에서 내쫓는다는 진리를 남겨놓았다. 이를 모르는 듯 오늘날 좌파 정치권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긴밀히 결탁해 우생학이 창안한 그 제도를 밀어붙인다. ‘좋은 의도’, 즉 서민 근로자의 삶을 위한 제도라는 허울 좋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도입 의도가 아무리 도덕적이라고 해도, 최저임금제는 필연적으로 실업을 증대한다는 엄연한 진리가 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정치권의 경제문맹자들은 알 턱이 없다. 노임, 노동시간 등의 문제는 시장이 할 일이고 불의(不義)를 막아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과제라는 분업의 원리도 알지 못하는 정치권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임금 노동자에게만 노동시장을 개방하고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접근조차 차단해 노동시장을 담합구조로 만드는 게 최저임금제다. 최저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영세 상공업자들의 시장 접근도 가로막는다. 그로 인한 낙오자는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잉여인간’이라는 근거 없는 우생학적 전제 없이는 시장 접근 차단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최저임금제 거부 운동은 그래서 아주 타당하다.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좌파 정치권은 상가 임대료 인하, 하도급 납품가 인상 등 정부 규제를 늘리고 수조원의 재정을 투입한다지만 돌아오는 건 늘 실업, 저성장, 양극화뿐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경제도 성장한다는 경제문맹자의 엉터리 논리로 더 이상 시민들을 우롱하지 말고 개인과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빼앗긴 자유’를 되돌려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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