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성/박진우 기자 ]
소방관은 ‘극한직업’ 1순위로 꼽힌다. 화마와 싸우고 분초를 다퉈 생명을 살린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외줄타기를 하기 때문에 직업 자체가 ‘극적’이다. 영화 등의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5만여 명에 달하는 한국 소방공무원의 ‘총수’인 조종묵 소방청장을 고즈넉한 서울 성북동의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운명’이었던 소방관
조 청장은 4남 4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이 53세, 모친이 45세 때 낳은 늦둥이다. 막내 사랑이 각별했을 법도 한데 조 청장은 정작 살가운 대접을 못 받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막내라 버릇없이 크면 안 된다’며 엄하게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초·중·고교를 다니면서 늙은 부모님이 부끄러워 학교 행사에 한 번도 못 오시게 했어요. 나중에 생각하니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1990년 소방간부로 임관하던 해, 제복을 입은 아들의 모습을 본 뒤 양친은 몇 개월 간격으로 눈을 감았다. 조 청장은 “죄송하다는 말을 끝내 못 한 게 늘 가슴에 걸린다”고 했다.
충남대 3학년 때 만난 아내와 연애 7년 만인 1988년 결혼했다. ‘올해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아내의 성화에 평생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도록 12월25일로 날짜를 정했다.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천안 중앙소방학교에 입교하는 바람에 아내는 정작 독수공방 신세였다고 한다. 조 청장은 결혼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줄곧 천안에서 살고 있는 ‘충청도 토박이’다. 조 청장은 “집안에서 아내의 권위는 절대적”이라며 웃었다. 또 “항상 열심히 쫓아다니며 뒷바라지해준 아내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흑임자죽과 백년초물김치가 전채 요리로 나왔다. 조 청장의 확연한 충청도 사투리가 흑임자죽만큼 구수하게 느껴졌다. 경북소방본부에서 근무할 땐 ‘전형적인 촌놈 말투’로 놀림도 많이 받았다고 조 청장은 회상했다. 그의 어릴 때 꿈은 체육교사였다. 축구 달리기 등 운동이 마냥 좋아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공을 차고 돌아다니곤 했다. 테니스 실력은 수준급이다. 2006년 경북 의성소방서장으로 재직할 때는 지역 기관장들끼리 ‘테니스 배틀’이 붙었다. 개인 강습까지 받고 시합 신청을 해온 ‘도전자’들에게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무용담을 늘어놨다.
조 청장의 첫 번째 직업은 일반공무원이었다. 9급 공무원 시험에 붙어 경제기획원 통계국에서 1년여 근무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일을 고민하던 중 ‘소방공무원 모집’ 현수막을 보고 망설임 없이 결심했다. “멋들어진 계기나 스토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돌이켜보면 그냥 운명처럼 다가왔던 것 같아요. 사람들을 구할 때 묘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온갖 고생이 한 번에 날아가는 기분인데, 이 맛에 다들 소방관 합니다.”
그는 소방간부 후보생 6기다. 소방청 개청 직전인 지난해 8월 소방총감으로 승진했다. 소방관 계급은 경찰관과 비슷하다. 소방총감 아래로 소방정감-소방감-소방준감-소방정-소방령-소방경-소방위 순이다. 소방위까지는 간부다. 소방위 아래 일선 현장에서 화재·구급 등에 땀 흘리는 소방장-소방교-소방사가 있다. 형사 또는 교통경찰로 일하는 경사, 경장, 순경에 상응하는 직급이다.
단주(斷酒) 계기가 된 천안초 화재참사
지난달 19일 세종시 주상복합 건축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화 주제가 옮겨갔다. 비가 계속 내리던 그날, 세종시 소방청 본청 가까운 곳에서 사고가 났다. 조 청장은 밤늦게까지 현장지휘를 했다. 현장 작업자 세 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친 안타까운 사고였다. 숨진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모 보건대를 다니는 20대 학생이었다. 28년간 소방관 생활을 하며 잊을 만하면 마주치는 비극이다. “새까맣게 그을려 나오는 대원들을 보면 너나없이 울음바다가 돼요. 마음이 너무 아프죠.” 망자를 보낸 유족의 마음을 달래는 일도 일상이다. 최근 조 청장은 지난해 9월 강원 강릉시 강문동 호텔 신축 현장 근처 정자(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 2명의 부인을 찾아 위로했다. 조 청장 취임 직후 발생한 사고다. “두 사모님이 대전현충원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언제라도 찾을 수 있게 말이죠. 도울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전현충원 근처 아파트 거주자 대부분이 현충원에 안장된 분들 유족이라네요.”
김과 깨가 정갈하게 담긴 그릇이 나왔다. 간장게장 딱지 속 내장을 긁어 밥과 비벼 먹으라는 용도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을 법한 시간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조 청장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2003년 3월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참사 이후 술을 입에 댄 적이 없다.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가 좁은 공간에서 빠른 시간에 퍼져 생긴 참사였다. 당시 천안소방서에 근무하던 그는 밤늦게 혼자 비상대기하던 중 이 사고를 접했다. 회식 외출 등으로 일부 간부는 부재중이었다. 같은 해 2월(대구지하철 참사)에 이어 연달아 발생한 이 사고는 조 청장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일선 현장에 불을 끄러 다닐 때는 위험한 적도 많았다. “폐기물 공장, 제재소, 양초공장 등 발화물질이 많은 곳 화재 진압이 많았어요. 2~3일 동안 한 곳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었죠. 축사 같은 곳에서는 불이 나면 가축들이 우왕좌왕 난리를 쳐서 더 어려워요. 쓰레기 하치장에서도 유리물질 난반사로 화재가 잦습니다.” 소방관 6명이 순직한 대참사로 기록된 2001년 3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주택화재 이전엔 방화복이 사실상 방화 기능이 없는 10만원 미만 ‘방수복’이었다는 기막힌 사연도 들려줬다. “장비도 개인장비가 아니었고 3~4명이서 돌려 썼어요. 그나마 홍제동 사고 이후 제대로 된 방화복이 지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소방관 고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돕겠다
2010년 충남소방본부에서 근무할 땐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양로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실력 발휘를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제과보다는 제빵이 더 어려워요. 빵은 만드는 데 기본적으로 4~5시간 걸립니다. 식빵만 해도 만드는 법이 다양해요. 피자빵도 쉬워 보이죠? 맛있게 만들기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는 “평생을 함께할 악기 하나를 마련하라”고 거듭 말했다. 국방대 파견 시절 색소폰 강좌를 7개월 들었는데 당시 색소폰이 주던 선율을 못 잊어서다. “일만 하고 살 순 없잖습니까. 즐거운 뭔가가 몇 개쯤은 있어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피곤하다고 찡그리기보다는, 악기를 불며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인생이 달라질 겁니다.” 그는 퇴임 후 1순위로 할 일로 ‘아마추어 색소폰 공연’을 꼽았다.
소방관이 시달리는 ‘가욋일’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3월 충남 아산소방서 소속 소방관 1명과 교육생 2명이 도로에 방치된 개를 구조하려다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2011년 고양이를 구조하려다 숨진 김모 소방관 사건과 비슷한 사고다. 벌집 제거도 종종 소방관의 몫이라고 한다. 취객들의 욕받이, 주먹받이가 되는 일은 거의 일상을 넘어 ‘업무’로 자리잡았다. 취객에게 폭행당한 후유증으로 지난 5월 숨진 익산소방서 강모 소방관 사건은 5만여 소방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깊은 한숨을 연신 내쉬던 조 청장은 “구급, 화재 진압 등 소방관 고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소방청 긴급번호 '119', '일일이 구한다'는 뜻
위기 상황에서 누구나 늘 떠올리는 소방청의 긴급번호 ‘119’는 ‘일일이 구한다’는 뜻이다. 육상재난 대응 총괄기관으로 소방청이 지난해 9월 개청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기존 소방방재청에서 방재 업무를 떼어내고 소방관으로만 구성해 새로 출범했다. 이달 기준 국가직 600여 명, 지방직(시·도 소방본부 등 소속) 4만9000여 명 등 5만여 명의 소방공무원이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국민을 지키는 곳이다. 개청 1주년을 맞아 소방청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현장인력을 대폭 증원하고 있으며 소방관 양성 마이스터고, 소방관 전담치료병원, 소방지휘역량강화센터 등 전에 없던 선진 시설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1961년 충남 공주 출생
△1980년 공주사대부고 졸업
△1987년 충남대 영문학과 졸업
△1990년 소방간부 후보생 6기
△1997년 충남 서산소방서 소방행정과장
△2005년 중앙소방학교 교학과 교무계장
△2010년 충북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박사
△2011년 소방방재청 소방정책국 소방제도과장
△2012년 대통령실 파견(소방준감)
△2014년 국민안전처 특수재난지원관
△2016년 국민안전처 중앙119구조본부장
△2017년 8월 소방청장(소방총감)
■조종묵 청장의 단골집 국화정원
봄에 잡아올린 암게로만 만든 간장게장 '별미'
서울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삼청각을 지나면 성북동 초입에 국화정원이 보인다. 맞은편에 만해 한용운 선생의 집이던 심우장이 있어 찾기가 쉽다. 국화정원은 1925년에 지어진 전통 기와 고택을 개조한 한식집이다. 30여 년의 궁중요리 경력을 가진 대표가 직접 음식을 만든다.
이곳의 대표 음식은 간장게장이다. 국화정원의 간장게장은 제철인 봄에 잡아 올린 암게로만 준비한다. 전남 진도나 충남 서산의 어부들과 직거래한다. 간장게장 소스는 매실청과 사과 등을 넣어 특유의 단맛을 내면서 너무 짜지 않도록 3일만 숙성한다.
‘간장게장 특선’을 시키면 함께 나오는 삼색전도 별미다. 버섯을 잘게 썰어 만든 전과 고기를 채워 넣은 가지전, 매콤한 낙지전으로 구성된다. 다진 갈빗살로 떡을 싸 쫀득함을 더한 떡갈비도 있다. 밀전병 안에 표고버섯이나 소고기, 새우를 채워 넣은 밀쌈도 코스에 나온다.
국화정원에는 해물을 맑게 끓인 신선로와 안심구이, 대하냉채 등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코스 요리도 마련돼 있다. ‘정1품(12만원)’ ‘정2품(8만5000원)’ ‘정3품(3만9000원)’으로 나뉜 코스 요리는 국화정원의 자랑거리다. 코스마다 특색있는 요리가 포함된다. 미리 주문하면 전복초회와 전복구이, 일품 모둠생선회 등도 맛볼 수 있다. 독립된 별채에서 식사하려면 예약해야 한다.
이해성/박진우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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