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문화공간 '찰칵'… "깨달음·감동 흔적 잡아냈죠"

입력 2018-07-29 17:17  

서울서 개인전 여는 독일 사진 거장 캔디다 회퍼

다음달 26일까지 국제갤러리서
미술관·오페라극장·도서관 등
대중예술공간 찍은 20점 선봬

지식·감동이 흐르는 공간 포착
언어로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사진예술로 깨우쳐주고 싶어



[ 김경갑 기자 ]
독일 출신 세계적인 여성 사진작가 캔디다 회퍼(74)는 주로 미술관이나 공연장, 도서관, 박물관 등 공공건물의 내부를 카메라 렌즈로 잡아내 시간과 공간, 깨달음의 융합을 시도한다. 그에게 예술 공간은 그 자체로서 무수한 생각과 의식이 흐르는 곳이다. 공연을 보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고, 인식의 변화를 일깨워주는 사회적 장소로 읽기 때문이다.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많은 것들을 사진예술로 깨우쳐준다는 점에서 그는 ‘현대판 계몽주의자’를 자처한다.

지난 25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그의 개인전은 수많은 예술이 펼쳐지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깨달음을 사진 예술로 명쾌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깨달음의 공간(Spaces of Enlightenment)’을 테마로 한 이번 전시에는 뒤셀도르프 시립극장을 비롯해 아르헨티나의 극장과 오페라 하우스, 프랑스국립도서관, 러시아 에르미타주미술관 등 무수한 감동과 흥분이 넘쳐났던 예술적 공간을 찍은 작품 20여 점이 걸렸다.

독일 사진계 대부 베른트 베허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 교수에게 수학한 그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투르스, 안드레아스 거스키, 악셀 휘테 등과 함께 ‘베허 학파’ 1세대 작가다. 초기에는 영국 리버풀 풍경을 비롯해 유럽 도처에 핀볼 기계가 놓인 공간, 독일 내 터키 이주민 등 공간과 인간의 사회적 상호 작용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과 같은 ‘공적 공간’을 뷰파인더에 담아냈다. 2003년 마틴 키펜베르거와 함께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 참가했고, 2006년에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을 촬영한 작품을 같은 곳에서 전시해 주목받았다.

서울 전시를 위해 방한한 회퍼는 “공연장과 미술관, 도서관 등 대중적인 건축 공간은 영원불멸의 예술을 통해 과거와 현대를 융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저는 그 공간의 주체인 인간이 제외돼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인위적인 조명을 배제하고 전시장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만으로 촬영하죠.”

‘인간의 부재’와 ‘공간의 연출’을 재해석하는 그는 광학 렌즈를 사용해 가능한 한 넓은 공간을 정면이나 대각선 구도로 열린 공공장소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 작품의 시각적 명료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캡션에도 촬영이 이뤄진 지명, 기관, 연도만을 기입하는 등 개입을 최소화한다. 인간의 문화유산이 집적된 장소의 내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건축 사진으로 오인되기 쉽지만, 사진 속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인문학적 사유를 함축하고 있다.

그는 “책과 예술이 연출되는 공간은 사회적 움직임들을 대표하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작품이 전시되는 방식에 따라 공간도 변하죠. 저는 공간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곳에 놓인 사물들로 인해 어떻게 변화됐는지, 이것들이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재학 시절 스승의 권유로 대형 카메라를 처음 잡았던 그는 1990년대 말에 삼각대와 6×6㎝ 카메라, 이후 9×12㎝ 네거티브를 사용하면서부터 대형 프린트도 가능해져 관람객들에게 공간 내 디테일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실제로 뒤셀도르프 시립극장,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세르반테스 극장, 프랑스국립도서관, 빌라 보르헤스, 에르미타주미술관 등 내부 공간을 찍은 작품은 그만의 긴 기다림과 호흡을 담아내서인지 화려한 풍경화처럼 빛난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무수히 많은 예술가·역사학자·철학자·관객이 스쳐간 공간들은 인문학적 장소로서의 역할을 일깨워주고, 나아가 예술 창작의 위대한 순간으로 진화한 셈이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평소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도 사진에 잘 담지 않는다는 회퍼는 “망아(忘我), 무아(無我)의 텅 빈 심경으로 오직 공간에만 집중해 깨달음의 흔적을 보여주려 한다”고 귀띔했다. 전시는 다음달 26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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