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은 금융업 분류
대기업 지주사가 소유 못해
與, CVC 설립 허용法 추진
스타트업 인수가액 높으면
공정위 M&A 신고 의무화
"대기업 벤처투자 더 위축"
[ 이태훈 기자 ]
벤처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은 1982년 생긴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 때문이다.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되는 것을 막자’며 36년 전 도입한 제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신생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혁신성장 역행하는 개편안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가 29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권고한 안은 정부가 추진 중인 혁신성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벤처업계의 평가다. 특위는 CVC 설립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허용할 수 없고 그 대신 벤처지주회사 제도를 활성화하라고 권고했다. CVC는 대기업이 자회사 형태로 설립하는 벤처캐피털(VC·벤처기업 투자 전문회사)이다.
특위 위원장인 유진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CVC는 금산분리 관련 이슈여서 금산분리 원칙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데 (특위 위원) 대부분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상 CVC는 금융회사로 분류된다.
벤처업계는 그동안 “CVC가 설립돼 대기업 자금이 벤처 생태계로 흘러들어야 혁신기업 창업이 활성화된다”고 강조해왔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이 활성화된 미국은 구글 GE 인텔 등 대기업이 CVC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은 CVC를 통해 로봇, 바이오, 드론(무인항공기), 자율주행차 분야 등에 투자하고 있다.
◆벤처지주사로는 한계
벤처업계는 특위가 CVC 대신 활성화하라고 권고한 벤처지주사 제도에 부정적이다. 지주회사가 소유한 전체 자회사의 절반 이상(주식가액 기준)이 벤처기업이면 벤처지주사로 분류된다. 이 경우 벤처기업의 계열사 편입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등의 혜택을 주지만 2001년 이 제도 도입 후 벤처지주사로 지정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 10곳에 투자해 9곳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한 곳에서 ‘대박’이 나면 성공하는 게 벤처캐피털”이라며 “각종 투자에 막대한 책임이 따르는 대기업 지주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이런 식의 투자를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특위가 ‘기업 인수 시 매출 규모가 작아도 인수가액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공정위에 인수합병(M&A) 신고의무를 부과하라’고 권고한 것도 벤처업계는 불만이다. 현재는 기업결합 신고기준이 ‘신고회사의 자산총액 또는 매출이 3000억원 이상이고 상대회사(피인수 회사)는 300억원 이상인 경우’로 돼 있다. 특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분야 스타트업은 성장 잠재력이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매출을 기준으로 하면 경쟁 제한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특위안대로라면 대기업의 벤처 투자가 더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니언시 정보 검찰에도 제공
특위가 CVC 설립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정위가 특위안대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해도 국회에서 내용이 수정될 수 있어서다.
국회에는 CVC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여당 발의로 제출돼 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표발의한 이 개정안은 벤처캐피털을 금융회사 범위에서 제외함으로써 일반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을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하고 있다. 김 의원은 게임업체 웹젠의 대표 등을 지낸 벤처기업인이다.
특위가 이날 공개한 권고안에는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제도) 정보를 검찰 수사에 제공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리니언시 정보 비밀엄수 의무 예외 조항에 ‘검찰 수사’를 추가해 검찰도 누가 담합에 대해 자수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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