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밀린 국내 인터넷 기업들
경쟁력 부족…규제 역차별도 원인
IT 성장동력 회복 골든타임은 3년
성공사례 더 만들려 경영 복귀
기업가정신이 사회 바꿔
청년들 창업 통해 혁신 역량 쌓아야
[ 임현우 기자 ] 한국의 성공한 인터넷벤처 기업인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이재웅’이다. 스물여섯 살이던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지금의 카카오)을 공동창업한 그는 메일, 카페, 뉴스 등 여러 영역에서 포털 사이트 다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8년 다음을 떠난 이후에는 투자회사를 세워 소셜벤처(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벤처기업) 육성에 주력해 왔다. 한동안 벤처 생태계의 ‘막후’에 숨어있던 그가 지난 4월 차량공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쏘카의 대표를 맡았다. 10년 만에 벤처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했다. 수천억원의 자산을 쌓아둔 벤처업계 대부가 6년차 스타트업의 CEO로 돌아와 이루고자 하는 청사진은 무엇일까. 지난 26일 서울 성수동 쏘카 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쏘카 경영을 맡은 지 석 달이 됐습니다.
“쏘카가 잘 성장해 왔지만 아직 개선할 점도 많습니다. 전국에 퍼져 있는 1만1000대 차량을 원격으로 관리하고, 예약과 배차를 매끄럽게 최적화하려면 상당한 기술과 데이터 분석이 필요합니다. 향후 전략은 어느 정도 완성했고요. 결과물을 하나씩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카셰어링 이용자들의 호불호(好不好)가 갈리기도 하던데요.
“취임 후 처음 한 일이 이용자가 느끼는 품질을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불만사항을 많이 읽어보는데 ‘앞 사람이 차를 너무 더럽게 썼다’가 제일 많아요. 렌터카와 달리 깨끗하게 쓰고 반납해야 하는데, 아직 카셰어링 경험이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입니다. 차량 관리를 강화하고, 지저분한 차는 교체하고, 이용자 홍보도 강화하는 중입니다. 4월과 비교해서는 항의가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쏘카의 궁극적인 목표는 뭡니까.
“‘그냥 렌터카 회사 아니냐’ 하면 솔직히 화납니다.(웃음) 기술과 데이터로 모빌리티(이동수단)를 혁신하고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플랫폼회사가 목표입니다. 차를 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대상으로 바꿔 사회적 비효율을 개선하고 다른 의미 있는 곳에 활용하자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1만 대 이상 차량을 갖춘 카셰어링업체를 둔 나라가 한국, 미국, 유럽, 일본밖에 없습니다. 경쟁력을 키워 해외에서도 성과를 높여야죠.”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이 규제에 막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카풀은 법적으로 거의 불가능했고, 쏘카가 하는 자동차대여사업도 제약이 많습니다.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나오기 힘든 환경이죠. 하지만 탑승객은 서비스가 불만이고, 택시기사는 처우가 열악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엄청난 보조금을 쓰는 이런 상황은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까진 기업들도 자기 주장만 내세우면서 갈등이 깊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시장 자체를 키우면서 택시업계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적극 제시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정부도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줄 걸로 기대합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미국의 우버 사례를 보면 나라마다 다른 해법을 도출해 풀어나갔습니다. 어느 국가에선 면허세를 내고, 다른 국가에선 탑승요금에 분담금을 붙여 택시산업 보조와 감차 지원에 쓰고 있습니다. 세금은 전혀 들지 않죠. 국내에도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10년 만의 경영일선 복귀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주변에서도 말렸고 ‘굳이 내가 해야 하나’ 싶어 머리 싸매고 고민 많이 했어요. 나름 소셜벤처를 계속 키웠으니 사회적으로 무의미하게 살지도 않았고…. 그러나 여러 상황이 겹쳐 결심했습니다. 상황이 조금만 좋았더라도 복귀를 결심하지 않았을 거예요. ”
▶어떤 상황들이 겹쳤다는 거죠.
“한국 경제에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이 듭니다. 새로운 혁신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고,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곳도 예전보다 성장이 둔해졌어요. 정부가 ‘혁신성장’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몇몇 대기업이 공장을 더 짓는다고 해결될 게 아니잖아요. 쏘카 상황도 그렇습니다. 창업 당시부터 애정을 갖고 지켜본 회사인데 허울 좋은 회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성장 속도를 더 높여야 했습니다.”
▶한국에 남은 골든타임은 얼마일까요.
“지금부터 딱 3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3년 안에 새로운 혁신기업을 배출하지 못하고 허둥대면 더 이상 해외 기업들을 따라잡기 어려울 겁니다. 우버 기업가치가 80조원쯤 되는데 국내 모든 자동차·항공사 시가총액을 다 합쳐도 한참 못 미칩니다.”
▶벤처 1세대가 기여할 역할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에 투자도 많이 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성장하는 혁신기업의 모범사례를 직접 보여주는 겁니다. 후배 창업자가 보기에 ‘저런 회사들이 끊임없이 크고 있구나’ 하며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야죠. 사회 전반의 혁신도 구체적인 모델 없이 논의해봤자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죠.”
▶덩치가 커진 벤처들은 대기업에 준하는 규제를 받기도 하죠.
“잘못한 건 당연히 비판받고 고쳐야 합니다. 기업들이 사회와의 소통에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다만 라인이나 넥슨처럼 해외에서 어마어마한 일을 이룬 회사도 많은데 반대쪽만 과도하게 조명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니 더 나서기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해외 정보기술(IT) 기업의 국내 공세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자국 기업만 보호해주길 바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야죠. 다만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국내 기업 경쟁력이 부족했던 면도 있지만 경쟁력을 약화시킨 부분도 있습니다. 구글 같은 회사가 규제, 망사용료, 세금 등 모두 유리한 구조에서 살아남을 국내 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같은 링에 올라와 있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역차별 문제는 다음이 야후코리아와 경쟁하던 시절에도 똑같이 겪은 건데 나아진 게 있나요.”
▶청년들이 창업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하죠. 안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기업가정신)이 사회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혁신기업을 창업한다는 것은 기존 시스템을 뚫고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창업의 과정을 경험하며 배우고 즐길 수 있다면 비록 그 기업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추천할 만한 일입니다. 나중에 대기업에 가든, 공무원을 하든 자기 분야에서 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재웅 대표는…
△1968년 서울 출생 △영동고, 연세대 전산학과(현 컴퓨터과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6대학(UPMC인지과학 박사과정) 연구원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 △2008년 투자회사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 설립 △2018년 4월~ 쏘카 대표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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