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CC, 모멘티브 품으면 실리콘 세계 2위 '도약'… 원익은 세라믹 강자로

입력 2018-07-30 17:35   수정 2018-07-31 13:34

세계 3대 실리콘社 미국 모멘티브 인수 추진

KCC, 원천기술 수천건 확보
4000곳 넘는 영업망도 얻어

'삼성전자 주요 협력사' 원익
석영·세라믹사업만 인수

임석정 SJL 회장은 '윈윈' 도와



[ 정영효 기자 ] 국내 대기업 KCC와 중견그룹 원익이 각각 실리콘과 반도체 원료 부문에서 ‘글로벌 톱’으로 비상하기 위해 사모펀드(PEF)와 손잡고 미국 모멘티브 인수에 ‘도전장’을 냈다. 성사되면 국내 인수합병(M&A) 사상 처음으로 대기업과 PEF가 합작한 컨소시엄이 글로벌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KCC 컨소시엄은 또 다른 인수후보 한 곳과 막판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다음달 중순께 결과가 판가름난다. KCC의 지난해 실리콘 생산량은 약 7만t. 모멘티브를 품에 안으면 단숨에 세계 24개 생산공장에서 연간 30만t 이상의 실리콘을 생산하는 세계 2위 회사가 된다. 수천 건의 원천기술도 확보한다. 모멘티브가 거느린 4000곳 이상의 고객사를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도 매력이다.

원익그룹은 삼성전자 최대 협력업체 중 하나다. 반도체 제조공정에 쓰이는 특수가스 생산업체 원익머트리얼즈와 반도체 재료인 석영·세라믹 제조업체 원익QNC 등 상장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 원익QNC는 국내 석영 및 세라믹 시장 점유율이 각각 37%, 26.6%에 달하는 1위 업체다. 모멘티브를 인수하면 세계 1위 석영·세라믹업체로 뛰어오른다.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KCC와 원익그룹에 모멘티브 인수는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다가왔다. 모멘티브는 2006년 아폴로가 38억달러를 주고 살 때 인수금액의 90%를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해줄 정도로 우량한 회사였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2014년 법정관리(챕터11)를 신청했지만 같은 해 아폴로가 재매입했다. 기계, 전자, 화학, 섬유, 종이, 건축, 토목, 화장품 등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실리콘의 원천기술과 생산시설을 모두 갖춘 알짜 회사이기 때문이다.

모멘티브는 세계 최초의 산업용 실리콘 생산기술, 의료용 튜브, 샴푸와 린스가 결합된 투인원 샴푸, 자외선(UV) 차단기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실리콘, 실리콘 폴리에테르를 사용한 섬유유연제 등 실리콘 분야에서 대부분의 ‘세계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문제는 자금력이었다. KCC와 원익그룹에 인수가격 2조원을 훌쩍 넘는 해외 기업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회사의 꿈을 하나로 묶어 실현할 수 있는 청사진을 내민 이는 국내 투자은행(IB)업계의 거물로 손꼽히는 임석정 SJL파트너스 회장이다. 33년의 투자은행가 경험을 통해 임 회장은 아폴로가 모멘티브 투자금 회수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아폴로는 이미 중국의 거대 화학기업에 모멘티브를 매각하려다가 무산된 경험이 있다. 중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견제하고 미국 핵심·첨단 기술 등의 유출을 차단하려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발목을 잡았다.

임 회장은 아폴로와 CFIUS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인수 구조를 짜는 게 관건이라고 판단했다. ‘KCC-원익-SJL 컨소시엄’을 전격 구성한 이유다. SJL, KCC, 원익 세 회사의 지분인수 비율은 각각 50 대 45 대 5로 정했다. SJL이 절반을 담당하는 건 글로벌 경영에 정통한 PEF가 모멘티브를 인수하는 구조를 갖춰 기존 경영진의 선호를 얻기 위한 포석이다. KCC와 원익 모두 국내 시장이 주력이어서 CFIUS의 승인을 받지 못해 거래가 무산될 가능성도 낮다는 평가다.

KCC 컨소시엄은 모멘티브 지분 100%를 사들인 뒤 실리콘 사업부와 석영·세라믹 사업부를 분리할 계획이다. 실리콘 사업부를 원하는 KCC와 석영·세라믹 사업부를 희망하는 원익의 이해관계를 맞추기 위해서다. 두 사업부 모두 SJL이 50%의 지분을 갖는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실리콘 사업부는 SJL과 KCC가 5 대 5, 석영·세라믹 사업부는 SJL과 원익이 5 대 5의 지분을 나눠 갖는 구도가 된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회사를 상장시켜 SJL은 투자금을 회수하고 KCC와 원익은 남은 지분 50%를 갖고 경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PEF인 SJL이 인수금액 절반을 대는 덕분에 기업들의 부담도 가벼운 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PEF가 거래 기회를 찾아 성사시키면 기업이 인수 회사를 경영하는 이상적인 SI(전략적투자자)와 FI(재무적투자자)의 결합 구조”라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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