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기자 ] 책 한 페이지에 담긴 글은 200자가 채 안 된다. 마주한 다른 쪽은 만화 그림이다. 책 전체 분량은 200쪽 안팎에 불과하다. ‘곰돌이 푸’가 전하는 말로 채운 두 권의 책은 출간된 지 6개월도 안 돼 50만 부가 팔려나갔다.
캐릭터를 앞세운 ‘위로(힐링) 에세이’ 주인공으로 푸는 후발주자였다. 2016년 빨강머리 앤, 지난해는 해달 캐릭터 보노보노가 인기를 끌었다. RHK 기획출판팀은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나섰다. 최경민 편집자(사진)는 책을 많이 읽는 30대가 좋아하는 디즈니 만화 속 인물을 떠올렸다. 주말 아침마다 기다리던 TV 속 디즈니 만화동산 캐릭터들과 대화하는 느낌으로 추억을 소환해보자고 팀원과 의견을 모았다.
저작권을 갖고 있는 디즈니와 서둘러 접촉했다. 디즈니 측에서는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책이 있으니 한번 검토해보라”고 했다. 찾아보니 그 책은 푸의 말을 명언으로 정리한 자기계발서였다. 최 편집자는 “콘셉트를 가져왔지만 글은 요즘 감성에 맞게 다시 썼다”며 “가르치려는 느낌이 강한 일본 책보다 공감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글자 수를 파격적으로 줄이고 아래위 공간을 넓혔다. 글 중간에 삽화를 넣은 것이 아니라 과감한 캐릭터 편집으로 보는 재미도 살렸다.
그렇게 올 3월 출간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지금까지 38만 부, 5월 선보인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12만 부 판매됐다. 통상 ‘성공한 책’의 기준으로 꼽히는 5만 부 정도 넘길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기획출판팀 내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독자들이 마음에 드는 구문과 페이지를 통째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찍어 올리면서 입소문을 탔고 예쁜 표지 디자인에 선물용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이를 겨냥해 제일 앞에 ‘TO. __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페이지를 따로 넣었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기분이 우울해질 것 같아도 걱정마. 그냥 배가 고픈 걸지도 몰라.” 빨간 티셔츠 아래 볼록 나온 배를 내밀고 순진하게 웃는 푸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위안을 얻었다. 마음먹으면 30분 만에 읽을 수도 있는 분량이지만 ‘갖고 싶은 책’ ‘아껴 보고 싶은 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푸는 시작이었다. 지난해 7월 디즈니와 저작권 협상을 할 때 푸뿐 아니라 앨리스와 미키마우스, 공주들까지 캐릭터 4건을 통으로 계약했다. 지난달 《앨리스 너만의 길을 그려봐》를 출간했고 올 연말까지 미키마우스와 엘사, 인어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공주 시리즈까지 연이어 선보일 예정이다.
최 편집자는 말했다. “어쩌다 운이 좋아 대박이 난 건 아닙니다. 어떤 취향이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분명 가치가 있는 거죠. 앞으로도 그런 책을 만들 겁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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