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친형 이재선씨(사진 왼쪽, 2017년 사망)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는 의혹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이재명 지사의 아내인 김모씨와 이재선씨의 딸 이모씨와의 통화 내용이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다. 2012년 6월7일에 한 전화통화에서 김씨는 “내가 여태까지 너희 아빠 강제 입원 내가 말렸거든. 너희 작은 아빠(이재명 지사) 하는 거. 너 때문인 줄 알아라”고 말했다. 많은 네티즌들은 “이재명 지사가 이재선씨를 강제로 입원시키려 했던 사실을 김씨가 스스로 밝힌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이재명 지사측은 “이재명 지사의 어머니와 형제 등이 4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이재선씨의 정신질환 진단 관련 논의를 진행한 직후인 6월 녹음된 것”이라며 “강제입원은 정신질환 진단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언론에 해명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이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취재한 결과 이재선씨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 입원 시도를 의심할만한 정황이 여러 군데서 확인됐다. 이재선씨와 가족이 모르는 상황에서 정신병원 입원 시도가 이뤄졌다는 점도 드러났다.
①정신병원 강제 입원시도 있었나
이재선씨에 대한 강제 정신병원 입원 시도 과정에는 이재명 지사가 스스로 ‘불행한 가족사’라고 표현한 사건들이 함께 얽혀 있다. 이재선씨의 부인인 박모씨에 대한 이재명 지사의 욕설 음성 파일, 이재선씨의 모친 폭행 논란 등도 정신병원 입원 시도가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건은 2012년 4월10일 이재명 지사와 이재선씨 형제의 모친인 구모씨가 성남시정신건강센터에 의뢰서를 내며 시작됐다. “아들(이재선)이 조울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으니 도와달라”며 성남시 정신건강센터에 이재선씨에 대한 정신과 치료를 요청한 것이다. 의뢰서에는 이재명 지사를 제외한 형제 3명도 함께 서명했다. 모친과 형제들은 이재선씨 가족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재선씨의 가족들은 “당시 이재선씨는 정신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이재명 지사의 성남 시정을 비판하는 입을 틀어 막기 위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 외에 다른 형제들이 의뢰서에 서명한 것도 “이재명 지사에게 생계 등을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형제들의 사이는 이재명 지사가 성남시장에 출마하던 2010년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이재명 지사는 성남 시장 선거 직전 이재선씨에게 찾아와 출마 포부를 밝혔고, 이재선씨도 성남시 영남향우회 등을 중심으로 동생의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것이다.
형제의 갈등은 2012년초 이재선씨가 이재명 지사의 ‘성남 모라토리엄 선언’을 비판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가족들의 전언이다. 성남 모라토리엄 선언은 당시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 지시가 전임 시장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용어로 채택됐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회계사였던 이재선 씨는 “회계학적으로 성남의 모라토리엄은 불가능하다”고 동생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어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20가지 항목에 걸쳐 성남시정을 비판했다. 이같은 내용이 지역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형제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이재선 씨는 동생(이재명)과의 통화나 만남이 이뤄지지 않자 하루 최대 23건의 비판글을 성남시청 게시판에 게재하고, 공무원들에게 전화해 이재명 지사와의 통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재명 지사는 여기에 대해 “형은 자신이 예수나 부처와 동격이라고 주장하는 등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였다”며 “내가 간첩이어서 구속된다고 국가정보원이 사주해 형이 확신을 갖고 퇴진운동을 하려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모친 구 모씨가 이재선 씨에 대한 정신치료 요청서를 성남시정신건강센터에 제출한 것은 이들 형제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 센터는 의뢰를 받은지 4개월 정도가 지난 2012년8월, 이재선씨의 정신병원 입원을 지방자치단체장인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에게 요청하는 ‘진단 및 보호 신청서’를 발급했다. 이 지사가 최종 서명을 하면 강제입원이 이뤄질 판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 지사는 승인을 하지 않았고 입원도 성사되지 않았다. “너무 부담이 크고 무리한 결정”이라며 입원 결정을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게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②왜 형수에게 욕설을 퍼부었나
이 과정에서 이재명 지사의 ‘형수 욕설 파일’이 터져나온다. 모친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한다는 점과, 여기에 이 지사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재선 씨는 크게 격분해 이 지사의 전화연락 등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해 7월6일 이 지사가 이재선씨의 부인이자 형수인 박 모씨에 전화로 막말과 욕설을 장시간 퍼부은 것이 온라인상에 유포된 ‘형수 욕설’사건의 실체다. 이어 터져나온 것이 이재선 씨의 모친 폭행 논란이다. 이 씨는 7월15일 정신과 치료 의뢰서를 낸 경위를 묻기 위해 모친 구모씨의 집을 찾았다가 형제들과 실랑이를 벌여 모친 폭행 논란을 낳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지사의 거짓말 논란이 야기됐다. 당초 이 지사는 자신이 형수에 욕설을 퍼부은 것과 관련, “형인 이재선씨가 모친을 때려 홧김에 욕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두개의 사건 시점을 따져보면 ‘형수 욕설’이 먼저 발생한 일이었다. 또 이재선 씨의 모친 폭행 사건은 추후 재판에서 형제들간 몸싸움이 벌어진 와중에 발생한 ‘우발적 폭행’으로 결말이 지어졌다. 상식적으로 볼 때 두 형제의 불화와 반목은 가족 내부인이 아니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렬하고 파행적이었다. 하지만 이재선 씨가 2017년 11월에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진실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됐다.
③성남시, 조직적으로 개입했나
사건의 추이만 놓고 보면 이재명 지사가 이야기했듯 ‘불행한 가족사’에 그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재선씨에 대한 정신병원 입원 추진 과정을 놓고 보면 당시 시장이던 이재명 지사를 중심으로 성남시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이 나타난다.
환자 본인도 모르게 정신병원 입원을 추진하면서 이재선씨의 정신병원 입원을 요청하는 모친의 의뢰서와 성남정신보건센터의 진단 및 보호 신청서에는 여러 건의 서류가 첨부됐다. 이재선씨의 정신 이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증명하기 위해서다. 모두 일반인은 얻기 힘든 성남시 자료다.
우선 의뢰서에는 성남시 공무원 8명의 진술서가 첨부됐다. 2012년 4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자치행정과와 행정지원과 등에서 민원인인 이재선씨를 상대했던 공무원들이 쓴 것이다. 여기에는 “죽여버리겠다. 나중에 시장 바뀌면 탄천 청소나 해라” “당신 간첩이야. 권력의 하수인이야” 등 이재선씨가 공무원들에게 전화로 했다는 폭언 내용이 담겨 있다.
성남시 일각에서는 이같은 진술서를 모으는 과정에 성남시가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내놓고 있다. 당시 82세였던 이재명 지사의 모친이 나흘간의 짧은 기간동안 성남시 공무원 8명을 일일이 접촉해 진술서를 받았을 것으로 믿기 힘들어서다. 이 지역의 한 일간지 기자는 “민원인이 아무리 이상할지라도 보수적인 성향의 공무원들이 정신병원 입원을 권하는 의뢰서를 써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냉정하게 말해, 시장이던 이재명 지사의 의중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술서를 작성한 공무원 중 한명으로부터도 이같은 정황을 뒷받침할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기자와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에는 진술서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거절했지만 성남시 내부에서 계속 요구해 써줬다. 처음엔 ‘악성 민원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라는 말에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민원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데 사용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무척 불쾌하고 당황스럽다.” 이에 대해 성남시측은 기자에게 “당시 진술서를 작성한 경위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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