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사회적 경제 활성화로 시장경제를 더 따뜻하게

입력 2018-08-05 17:44   수정 2018-08-07 13:55

우수 자활기업 '청소하는마을'처럼
지역 중심 사회적 경제 모델 확산
공공조달 및 인재 양성 지원도 절실

고형권 < 기획재정부 1차관 >



영화 ‘뷰티풀마인드’의 실제 주인공 존 내시는 수학자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다. 미국 프린스턴대 대학원 재학 시절 친구들이 바에서 금발 미녀에게 관심어린 눈빛을 보내자 이렇게 말한다. “애덤 스미스는 틀렸어. 모두가 경쟁의 원리로 미녀를 차지하려고 하면 미녀를 차지할 수 없고 그녀의 콧대만 높아질 뿐이야.” 그의 게임이론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쟁만이 절대선(絶對善)일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협력과 연대가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시장이 불완전하거나 실패할 경우 협력과 연대가 제 기능을 하는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어촌 공동체회사 등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들 수 있다. 이들 기관은 일자리·사회서비스 제공, 환경보호, 지역사회 공헌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부수적으로 영리를 도모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저성장 현상이 가속화됐다. 이에 사회적 경제를 통해서 고용불안, 빈부격차 완화, 사회안전망 강화, 공동체의식 함양을 이루려는 목소리가 지구촌 곳곳에서 울렸다. 2009년 유럽연합(EU)은 ‘사회적 경제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하면서 관련 정책 수립과 집행을 강화했다. 스페인 명문 축구구단 FC바르셀로나와 키위생산자 조합인 제스프리, 장애인이 만드는 유제품 제조회사인 라 파제다 등은 세계적인 기업과 조합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사람, 환경, 공동체의 가치에 주목하자는 울림은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에도 담겼다.

한국도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하고 2012년에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지방자치단체별로는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시행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열린 사회적 경제 박람회에서 우수 자활기업으로 선정된 ‘청소하는마을’은 참여 인원과 연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전북 완주군은 청년 축제 참여 10% 할당제, 청년참여 예산제, 청년 인턴 지원 등 ‘청년완주 JUMP 프로젝트’로 지역공동체 복원에 성공했다. 30년 안에 전체 읍·면·동의 40%인 1383개가 소멸될 위험에 처했다는 암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구가 증가해 시 단위 승격을 꿈꾸고 있다.

우리 민족의 피에는 향약, 두레, 계의 정신에서 발현되는 협력과 연대 DNA가 있다. 하지만 연대를 강조하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식은 낮고 갈 길이 멀다. 관련 기업 등이 영세하고 고용 비중도 1.4%로 6.5%에 이르는 EU의 22% 수준에 불과하다. 부처별로 관련 지원 제도가 분산돼 불필요한 행정비용이 발생하고 정책 연계성과 민·관 협업도 부족하다. 지자체별로 지역사회 중심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다. 중앙정부도 공공조달을 통한 판로 확대, 사회적 경제 기업에 대한 투자환경 개선과 금융 접근성 제고, 전문 인재 양성 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빵을 훔치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주교의 은총에 감화받아 혁신가로서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된다. 장발장이 살던 시절에서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 통합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힘없는 장발장이 사회적 경제 활동으로 연대하면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해지고 희망의 꽃이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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