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란의 '모스타자핀'

입력 2018-08-07 18:53  

고두현 논설위원


“이 정권과 부패한 통치자들 다 망해버려라.” 중년 여성이 상추와 양배추 값을 치르면서 정부를 비난했다. “그들은 매일 우리를 더 가난하게 하면서 자식들을 미국과 캐나다로 보냈습니다. 경제는 거덜나고 물가는 치솟고… 분노가 치밀어요.”

파이낸셜타임스가 어제 보도한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시장 풍경이다. 한 소비자는 “식품 가격이 올해 초보다 50% 뛰었다”고 했고, 상인들은 “가게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이란 정규군인 혁명수비대 출신의 한 남성은 “왜 우리는 매일 가난과 씨름하면서 부패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저소득층의 고통과 불만은 더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끼니까지 걱정할 만큼 경제가 나빠진 탓이다. 도시 빈민들은 “예전에는 고기를 먹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빵과 요구르트는 먹었는데, 지금은 요구르트조차 제대로 못 먹을 판”이라고 말했다. 참다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모스타자핀(mostazafin)’이라고 부른다. ‘빈곤한 사람들’이나 ‘억압받는 사람들’을 뜻하는 페르시아어다. 이란 지배층인 성직자와 통치자들은 1979년 혁명을 ‘팔레비 왕조에 대한 모스타자핀의 저항’이라고 설명해왔으나 지금은 혁명 정부의 기득권 세력이 모스타자핀의 저항에 직면했다.

국민적 분노의 배경에는 정권 부패와 권력 투쟁, 경제정책 실패, 물 부족, 잦은 정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다 핵무기 개발 재개 의혹 때문에 미국의 경제제재까지 받게 됐다. 오는 11월부터는 석유 거래마저 묶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해상 무력시위를 벌이며 “타도 미국”을 외치고 있다.

정치권의 무능과 아집 때문에 애꿎은 모스타자핀만 죽을 노릇이다. 하긴 “미국과의 싸움은 견딜 수 있지만 국민의 가난이 알려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정권이니, 국민의 배고픔보다는 ‘반미 투쟁’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정부 통제를 받는 이란 방송은 청년실업률이 40%를 넘는데도 보도하지 않는다.

지난주에는 정부가 부패 혐의로 중앙은행 부총재를 체포하면서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지만, 확산되는 시위를 막지는 못했다. 집회와 시위가 엄격히 통제된 이란에서는 이례적이다. 그만큼 경제난과 생활고가 심각한 상황이다.

오죽하면 혁명수비대 최고사령관이 “외국의 군사적 위협보다 국내 정치가 더 문제”라고 했을까. 테헤란 북부의 한 채소가게에서 일하는 19세 청년은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지만 희망이 없다”며 “거리에서 시위대를 만나면 가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전 국민이 모스타자핀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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