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왜곡 최저임금 지지자들
빈곤퇴치 위해 인상 주장하지만
약자들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아
1930년대에 노조가 정한 이하로
임금 못 받도록 한 法 만든 것도
흑인 근로자의 시장 진입 저지용
미국 연방항소법원(한국의 고등법원에 해당)은 최근 앨라배마주 최저임금법에 이의를 제기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주 정부가 시 의회의 최저임금 인상을 막은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원고 측은 최저임금을 올리지 못하도록 한 앨라배마주 조례가 버밍햄시 지역의 흑인 근로자를 차별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사람은 법에 의해 동등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14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소송의 발단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버밍햄 시의회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10.1달러로 올리는 조례를 제정했다. 연방 최저임금인 시간당 7.25달러에 비해 40% 가까이 높은 수준이었다. 조례가 발효된 다음날 공화당 소속인 로버트 벤틀리 당시 앨라배마 주지사는 버밍햄시의 최저임금 인상을 무효화하고 주 전체에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하는 최저임금법에 서명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흑인 근로자들은 곧바로 흑인 의원 및 미국 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와 함께 앨라배마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방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원고 측은 항소했고 연방항소법원은 앨라배마주의 최저임금법이 흑인을 차별할 소지가 있는지 살펴보라는 취지로 사건을 하급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이들은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선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버밍햄 시의회 의장은 “최저임금 반대론자들은 재정 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이 스스로 장화 끈을 묶어야 한다고 하지만, 장화를 살 돈이 없으면 장화 끈도 묶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정책이 획기적인 빈곤 감소로 이어졌다는 근거는 별로 없다. 경제학자들이 수십년간 연구한 결과 그렇게 나타났다. 밀턴 프리드먼은 1962년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최저임금법은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 결과를 낳은 정부 정책의 가장 명확한 사례”라고 했다. 프리드먼은 “사실 최저임금법이 어떤 효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빈곤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까지 지적했다.
근로자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증가하면 고용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다. 비용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고용됐을 사람이 늘어난 비용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모는 것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시간당 고용 비용이 오른 만큼 근로시간이 감소한다면 근로자 생활은 개선되지 않는다. 미국 일부 지역에선 이런 교훈을 비싼 대가를 치르며 배우고 있다.
시애틀은 2015년 미국 주요 도시 중 최초로 최저임금을 2021년까지 시간당 15달러로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듬해 워싱턴대는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임금 인상 효과가 고용 축소와 근로시간 감소로 상쇄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과 근로시간이 줄어 실제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연방항소법원은 버밍햄시 인구의 72%가 흑인인 반면 시의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한 주의회 의원은 대부분 백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반대가 인종적 편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법안을 통과시킨 사람의 피부색이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까. 지난해 볼티모어의 흑인 시장 캐서린 퓨는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줄어 저임금 근로자가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앨라배마 주의회 의원들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역사적으로 흑인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들은 최저임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지 자유시장 지지자들이 아니었다. 1930년대 의회는 노조 요구에 따라 데이비스-베이컨법, 공정노동기준법, 와그너법 등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들은 노조가 정한 수준 이하로는 임금을 받지 못하도록 해 흑인 근로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시절 노조는 흑인 근로자의 조합원 가입을 금지했다.
당시 의원들은 인종적 편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연방 공공사업 근로자 임금을 규제한 데이비스-베이컨법 청문회에서 윌리엄 업셔 의원은 “흑인 근로자가 너무 많아서 정말 문제”라고 말했다. 또 한 명의 임금규제법 지지자인 존 커크란 의원은 “저임금 흑인 근로자가 백인 근로자를 밀어내는 현상에 대한 불만이 최근 몇 달간 많았다”고 언급했다. 마일스 앨굿 앨라배마주 의원은 흑인 근로자와 함께 뉴욕에 다녀온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런 값싼 노동력이 전국에 걸쳐 백인 근로자와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최저임금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종적 편견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 다르지 않다. 노동력이 과잉인 상황에서 노동비용 상승은 실업 증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흑인들이 종종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연방항소법원이 미국의 최저임금 논쟁에 인종적 요소가 있다고 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그러나 경제학을 왜곡하는 최저임금 지지자들은 흑인 최하층 계급에 도움이 되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원제=Does the Constitution Mandate Minimum Wage Hikes?
정리=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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