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수 기자 ] 정부가 규제 개혁을 하겠다고 야단이다. 청와대가 중심이 돼 우선적으로 개혁할 핵심 개혁 대상으로 20개 리스트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원격 의료 허용, 수도권 규제 완화같이 깜짝 놀랄 만한 내용도 들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은산분리 완화를 천명하고 나서면서부터 벌어지는 일이다. 경제 기조가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에서 혁신 성장으로 전환하는 신호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내분, 이상할 게 없다
물론 옳은 방향이다. 진작에 없어져야 했다. 그렇더라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지금 없애겠다는 규제들이 어제오늘의 것이 아닌데다, 이제껏 존속해온 이유가 다름 아닌 야당 시절 더불어민주당의 한결같은 결사 반대의 산물이기에 그렇다. 그 얼굴들이 바뀐 것도 아니다. 당장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가 그렇다. 민주당이 산업자본의 지분 한도를 한사코 낮추는 바람에 인터넷전문은행은 태생적으로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 이뿐인가. 지금 청산 리스트에 오른 원격 진료 허용이나 수도권 규제 완화, 대통령과 민주당이 국회 처리를 간곡히 바라는 서비스산업 기본법, 규제 프리존법 등도 역시 같은 이유로 전 정권에서 막히지 않았나.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규제 개혁을 둘러싼 민주당 분열은 이상할 것도 없다. 대통령이 지시한 은산분리 완화조차 그렇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자리를 민주당 의원들이 피하고, 민주당 지도부가 34%의 지분을 허용하려 하자 “너무 높다”며 당론을 운운하고, 의원들이 다른 내용의 법안을 내는 등 대놓고 반발한다. 야당 땐 그토록 반대하던 것을 여당이 돼 돌연 찬성으로 뒤집어 일구이언하려니 말이 꼬인다. 규제 완화라면 특혜로 아는 프레임으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어 본인의 일관성을 지키는 게 낫다는 사고방식일 게다. 물론 국정을 이끄는 집권 여당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규제 개혁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진정성 있는 규제 개혁을 하겠다면 과거 행태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면 더욱 그렇다. 차제에 경제 컨트롤타워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청와대 정책실장, 혁신 성장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기업 개혁은 공정거래위원장’이란 식의 권한 분점형 선단식 구조로는 안 된다. 이 점과 관련해선 “김동연 부총리가 경제 원톱에 서고 대통령 참모인 장하성 정책실장은 그림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 민주당 소속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정성호 의원) 말을 경청해도 좋겠다.
경제 컨트롤타워 분명히 해야
대통령과 청와대가 규제 개혁을 꺼내 든 배경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은 안 되니 혁신 성장으로 돌파구를 열려는 뜻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면 혁신 성장이 경제 운영 기조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규제 개혁은 기득권을 가진 계층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국민생활과 직결된 사소한 규제조차 없애기가 쉽지 않다. 현재 푸드트럭이 몇 개나 되는지 보면 알 것이다. 하물며 의료 개혁, 노동 개혁 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판에 여당 당론조차 정리가 안 되는 터다. 전 정부 때 했던 일이라면 모조리 적폐청산이라며 단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선 공무원들은 또 어떻겠나? 웬만한 의지로는 어림없다. 규제 개혁의 진정성부터 인정받아야 동력이 생긴다.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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