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인상하고 수급권 축소하고
다층연금체계 세우도록 도와야"
김원식 < 건국대 교수·경제학 >
누군가가 “국민연금 제대로 받을 수 있어요?”라고 물어 오면 “다 못 받는다”라고 답변한다. 묻는 이들도 제대로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소위 연금 전공자인 필자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위안 받기를 원하는지 모른다. 정부는 연금을 못 주는 일이 당장 일어날 것은 아니니까 매우 강하게 “다 보장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 확률은 17일 발표될 국민연금제도개선위원회의 보고서에서 유추되는 바와 같이 거의 ‘제로’다. 구조적으로 낸 것보다 더 많이 받아가도록 돼 있고 그 차이도 정부가 통상적 증세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다.
국민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면 법으로 보장된 수급권이 발생한다. 이 수급권은 국민연금 수지의 흑자·적자에 관계없이 사망 시까지 보장된다. 수급자는 오래 살면 살수록 좋다. 국민 된 입장에서 정부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노후 불안시대에 국민은 연금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보험료를 낸다.
국민연금은 본인이 낸 보험료로 조성된 국민연금기금의 원리합계로 지급돼야 하는데, 사실 이런 방식으로는 급여가 턱없이 모자란다. 따라서 임시방편으로 자신의 연금을 적립하기 바쁜 근로자들의 보험료로 모인 기금의 몫까지 털어서 충당해야 한다. 현재 근로자들이 노인이 돼 받을 연금도 후배 근로자들이 낸 보험료로 상당 부분 충당돼야 한다. 밑돌 빼서 윗돌 괴는 다단계 폰지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폰지게임의 파산 리스크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혹은 기금수익률이 떨어지면서 더 가중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저출산이 동시에 고속으로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이제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결정하고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우선, 젊은 근로자들은 보험료 인상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보험료를 납부한 고령 근로자들은 소득대체율의 인하나 연금수급연령의 상향조정 등 연금수급권을 축소하는 ‘세대 간 합의’를 해야 한다. 고령근로자들은 법에서 정한 것이니 약속한 연금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를 상대로 한 헌법소원도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그들의 연금 채권을 변제해 줄 능력이 없다.
다음은 600조원을 훌쩍 넘어선 국민연금기금의 비정치적, 중립적 그리고 안정적 운용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을 제고해 재정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용이 오히려 국민연금기금을 거덜 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불안정한 글로벌 기업환경에서 기업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지도 않으면서 그들의 손발을 묶는 제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일탈하는 기업 경영진의 비윤리적 혹은 반(反)사회적 전횡으로부터 주식가치가 폭락하는 것을 예방하는 수준의 도덕적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고령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 고령사회는 노인들이 대접받는 계층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일해야 하는 계층이어야 지속가능하다. 따라서 의무가입 연령도 상향 조정돼야 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근로소득이 있는 한 누구나 연금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더 받게 해야 한다. 이 대안이 국민연금재정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 노인들을 천덕꾸러기로 취급하면 안 된다. 노인들의 근로능력을 높여서 생산성에 따라 적절한 임금을 받으면서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고, 이에 따라 보험료도 더 내게 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이 완결판 노후보장 수단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최후 순위의 기초적 노후보장 수단으로 존속돼야 함을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보험료율 인상이나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 상향 등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의 대안을 국민에게 설득시켜 신속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이 스스로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등의 사적연금을 더 많이 쌓도록 다양한 지원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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