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쉬는 곳이 아니야"
#래빗GO 발로 찾은 무더위쉼터 문제점
20분 걸어도 안 보이는 쉼터 안내판
무더위쉼터 옆 '출입자제' 안내문
구불구불 골목길 속 '숨은 쉼터 찾기'
노인시설 편중…젊은 층은 눈치 보여
'무더위쉼터 즐기세요'
바로 옆엔 '출입 자제' 안내문
광장에 선 이순신 장군님께 하소연했지만, 장군님은 언제나 그렇듯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의 줄임말)' 표정으로 답 하시는 군요. 오가는 사람들 손에 부채나 손풍기(휴대용 선풍기) 같은 아이템이 보입니다. 열정만 있고 요령은 없는 인턴이 그런 걸 준비했을 리가 없죠.
정수리가 다 타기 전에 'DJ래빗'이 그린 전국 무더위쉼터 지도를 열어볼까요? 제 모발은 소중하니까요.
가장 가까운 쉼터가 걸어서 20분… 하… 카페에 들어갈지 손풍기를 살지 고민하던 찰나, 빨간 우체국 간판이 보입니다.
이건 들어오라는 걸까요, 말라는 걸까요? 정답을 아는 분께 이 은행 무더위쉼터 무료 이용권을 드립니다. 세금 낸 당신은 이미 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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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센터 들어가려면,
큰 결심이 필요해!
이번엔 무더위쉼터 지도에 있는 쉼터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인사동 길에는 친절하게도 '화장실 50m' 같은 시설 안내판이 많더군요. 무더위쉼터 안내판은 아직 안 만든 걸까요?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20분을 걸으니, 드디어 '무더위쉼터'라는 초록 간판이 붙은 목적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곳, 무더위쉼터이기 전에 노인복지센터 건물입니다.
안을 슬쩍 보니 어르신들이 의자에 빼곡히 앉아 계시는 군요. 젊은 사람이 들어가도 되나? 괜히 스마트폰으로 바깥 온도를 확인합니다. 34도. 분명 정부가 누구나 쉼터를 어디든 이용하라던 폭염 특보 상황이네요. 건물로 들어가는 내 또래가 없는지 기다려봅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죠. 정신줄을 다잡아봅니다. 나는 인턴기자다! 어서 들어 가즈아~~!!!
빈 의자에 앉아 70대 어르신에게 "많이 더우시죠"라고 말을 건네 봅니다.
젊은이가 이 시간에 일 안하고 뭐 하냐고 말씀 하시네요. 저 일 하러 온 건데… 어르신이 무언가 착각을 하신 게 분명합니다.
둘러보니 우리 주변만 자리가 비어 있고, 다른 의자들은 어르신들이 만원 지하철처럼 붙어 앉아 계시네요. 어르신들 휴식공간을 방해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서 나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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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쉼터는
원래 노인 전용?
다음 목적지는 난이도가 더 높은 경로당입니다. 예상대로 문을 여니 12평 남짓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계신 할머니들의 시선이 날아와 꽂히네요. 할머니 한 분이 "어디서 나왔냐"며 경계합니다. 지나가던 청년인데 너무 더워서 잠시 쉬러 왔다고 둘러대 보지만,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분들에겐 이런 거짓말이 통할 리가 없죠. 짧은 취조 끝에 인턴기자라고 실토합니다.
기왕 들킨 거 궁금한 건 대놓고 물어봐야죠.
오자 마자 의심을 받은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신체가 약해 무더위에 취약한 사람들은 젊은이 중에도 있다는 사실. 할머니들께 잘 전달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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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곳 중 비상구급함은
'단 한 곳'
10분 거리에 있는 경로당을 한 곳 더 들러 봅니다. 잘 보이는 곳에 생수더미와 비상 구급함이 눈에 들어오네요. 아이스팩, 비상용 산소용기 등 온열환자 응급처치에 필요한 물품이 가득합니다. 다른 무더위쉼터에도 이런 게 있었던 걸까요? 쉼터 6군데 만에 처음 보는 구급함입니다.
근처에는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주민센터도 있지만, 할머니들은 이곳이 편하다는 군요. 여긴 같이 수다 떨고 밥 먹을 친구가 있으니까요. 아침에 문을 열면 저녁 9시까지 한 곳에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있으니 바다나 계곡이 부럽지 않죠.
경로당 회장님께 회원이 아닌 어르신들도 더위를 피하러 찾아 오냐고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더워도 불편한지 잘 안 와. 얼마전에는 요 옆에 쪽방촌 사는 사람들이 집에서 변을 당했다던데…" 라며 안타까워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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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주민 없는
쪽방촌 무더위쉼터
어르신들이 잘 찾지 않는다던 주민센터로 가봅니다. 국민재난포털을 보면 이곳은 24시간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는 곳이네요. 즉 쉼터에서 잠도 잘 수 있다는 말이죠. 근처에 쪽방촌이 있어 특별히 마련한 듯합니다.
들어가보니 24시간 쉼터라도 같은 공간에서 계속 운영하는 게 아니군요! 주간(오전 9시~오후 6시, 특보 발령 시 오후 9시까지 연장)은 5층 도서관에서, 야간(오후 9시~다음날 오전 7시)에는 4층 악기연습실에서 운영한답니다.
24시간 쉼터지만 오전 2시간 정도 운영 공백은 있네요. 야간에 운영하는 공간은 남녀 공간이 나눠져 있고, 한쪽 벽이 모두 거울로 된 텅 빈 방입니다. 크기만 보면 40명은 거뜬히 자겠는데요?
담당공무원이 생수, 이불 등 야간 무더위쉼터 운영에 쓸 물품들을 꺼내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야간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하네요. 쪽방촌 사람들은 무더위쉼터에 왜 오지 않는 걸까요?
담당자는 "야간 운영한 지 일주일밖에 안돼 홍보가 덜 된 것도 있고, TV도 없는 적적한 공간이라 오길 꺼려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5층 도서관은 책이라도 있었는데, 4층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밖에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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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쉼터,
진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세요!
인턴기자가 본 무더위쉼터 문제점은 크게 5가지입니다.
1. 무더위쉼터는 찾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못 쓰는 사람들, 특히 검색에 익숙치 않은 고령층은 쉼터 위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길거리에 화장실 이정표는 많지만 무더위쉼터 이정표는 한 군데도 없으니까요. 찾기 어렵고, 찾아도 들어갈 수 없다면 쉼터가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관계 기관의 홍보가 절실합니다. 찾아가기 쉽도록 길 곳곳에 무더위쉼터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2. 무더위쉼터는 멉니다!
쉼터 위치도 문젭니다. 경로당 같은 쉼터는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이 아닌, 구불구불 골목길에 숨어 있거든요. 저희가 찾은 곳 중에는 무더위쉼터 지정 전에 담당자가 이 곳을 직접 와봤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외진 곳도 있었습니다.
지정하기 쉬운 곳이 아닌, 필요한 사람들이 실제로 찾아가기 편한 곳을 조사해 재지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중심 종로를 20분 걸어도 무더위쉼터를 찾을 수 없었던 건, 아직 쉼터 수가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경로당 같은 노인복지시설 뿐 아니라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 활용, 민간과의 연계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2016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보고서를 보면 일본은 민간 서점, 상점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두바이는 버스정류장에 냉방시설을 설치하기도 한다고 하네요.
3. 무더위쉼터는 불편합니다!
쉼터인데 편하게 쉴 수 없었습니다. 쉼터 안내문 옆에 '업무 외 출입 자제'가 써 있던 은행은, 들어가더라도 고객 대기좌석 말고는 앉아 있을 공간이 없었습니다. 또 젊은 세대는 위치를 찾아도 경로당이나 노인복지센터라면 들어가지 않겠죠. 쪽방촌 인근에 마련한 주민센터 야간 쉼터는 전입신고 안 한 쪽방촌 주민들이 이용을 꺼린다는 모순도 보였습니다.
4. 운영지침을 모릅니다!
쉼터 운영지침을 더 명확하고 세세하게 정하면 어떨까요? 업무공간과 분리된 쉼터 설치, 응급물품 구비, 좌석 수 같은 기준 말이죠. 또 무더위쉼터는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홍보가 절실합니다. 지자체는 경로당 입구에 무더위 쉼터 마크를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의 취지를 어르신들이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5. 취약층 맞춤 대책 절실!
쪽방촌 주민, 노숙자, 무직자 등 폭염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일부 지자체는 폭염 때 사회보건인력, 공무원, 통반장 등 '재난 도우미'들이 취약계층에 전화나 방문을 한다고 하네요.
이런 복지 시스템이 전국 단위로 정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재난 도우미도 늘리면 어떨까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더위 때문에 쓰러지도록 그냥 내버려 둬선 안되니까요!.!
[1] 전국 무더위쉼터 찾기: https://bit.ly/2A5IJR9
[2] 폭염 시 행동 요령: https://bit.ly/2A6ZpYC
[3] 기상정보 확인: https://bit.ly/2IQG3di
[4] 서울시 무더위쉼터, 의료기관 정보: http://bit.ly/2xaDH4m
# 래빗GO? 사건사고 · 시위 현장, 주목받는 장소, 전시 · 박람회, 신규 매장 등을 찾아 공간이 지닌 의미 및 특징을 보여드립니다. 뉴스래빗의 시각과 평가가 담긴 이미지, 영상을 통해 독자가 현장감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뉴스래빗'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책임= 김민성, 연구= 이창우, 박진홍 인턴기자 m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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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GO 발로 찾은 무더위쉼터 문제점
20분 걸어도 안 보이는 쉼터 안내판
무더위쉼터 옆 '출입자제' 안내문
구불구불 골목길 속 '숨은 쉼터 찾기'
노인시설 편중…젊은 층은 눈치 보여
무더위쉼터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요? 정부는 무더위쉼터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데, 정말 그럴까요? 전국에 5만2000곳(한시적 전국 은행 7000여곳 포함)이 있고, '무더위쉼터' 구글 검색 결과만 약 500만 건이나 되는데 왜 아무도 모를까요?
폭염 특보가 발령됐던 8월 9일, 햇살보다 뜨거운 열정을 지닌 뉴스래빗 이창우, 박진홍 인턴기자(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졸업반)들이 무더위쉼터의 실상을 보기 위해 서울 종로 일대를 직접 발로 뛰어봤습니다 !.!
폭염 특보가 발령됐던 8월 9일, 햇살보다 뜨거운 열정을 지닌 뉴스래빗 이창우, 박진홍 인턴기자(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졸업반)들이 무더위쉼터의 실상을 보기 위해 서울 종로 일대를 직접 발로 뛰어봤습니다 !.!
'무더위쉼터 즐기세요'
바로 옆엔 '출입 자제' 안내문
"더운 게 아니라 뜨겁네요."
광장에 선 이순신 장군님께 하소연했지만, 장군님은 언제나 그렇듯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의 줄임말)' 표정으로 답 하시는 군요. 오가는 사람들 손에 부채나 손풍기(휴대용 선풍기) 같은 아이템이 보입니다. 열정만 있고 요령은 없는 인턴이 그런 걸 준비했을 리가 없죠.
정수리가 다 타기 전에 'DJ래빗'이 그린 전국 무더위쉼터 지도를 열어볼까요? 제 모발은 소중하니까요.
가장 가까운 쉼터가 걸어서 20분… 하… 카페에 들어갈지 손풍기를 살지 고민하던 찰나, 빨간 우체국 간판이 보입니다.
무더위쉼터 표시가 없는데… 설마 관공선데 내쫓진 않겠지?
우체국은 편지나 택배만 보내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우체국은 사랑입니다. 찬 바람을 사정없이 내뿜는 대형 에어컨이 있는 이곳은 천국입니다. 50대로 보이는 아저씨는 아예 에어컨 옆에서 신발을 벗고 우체국의 사랑을 원없이 받고 있네요.
우체국 옆 한 은행은 출입문에 '무더위쉼터'라고 안내문을 붙여 놨네요. '시원한 여름 즐기세요'라는 친절한 인사말까지 건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안내문이 하나 더 있네요.
우체국 옆 한 은행은 출입문에 '무더위쉼터'라고 안내문을 붙여 놨네요. '시원한 여름 즐기세요'라는 친절한 인사말까지 건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안내문이 하나 더 있네요.
ATM 이용 업무 외 출입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들어오라는 걸까요, 말라는 걸까요? 정답을 아는 분께 이 은행 무더위쉼터 무료 이용권을 드립니다. 세금 낸 당신은 이미 VIP!
노인복지센터 들어가려면,
큰 결심이 필요해!
이번엔 무더위쉼터 지도에 있는 쉼터를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인사동 길에는 친절하게도 '화장실 50m' 같은 시설 안내판이 많더군요. 무더위쉼터 안내판은 아직 안 만든 걸까요?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20분을 걸으니, 드디어 '무더위쉼터'라는 초록 간판이 붙은 목적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곳, 무더위쉼터이기 전에 노인복지센터 건물입니다.
안을 슬쩍 보니 어르신들이 의자에 빼곡히 앉아 계시는 군요. 젊은 사람이 들어가도 되나? 괜히 스마트폰으로 바깥 온도를 확인합니다. 34도. 분명 정부가 누구나 쉼터를 어디든 이용하라던 폭염 특보 상황이네요. 건물로 들어가는 내 또래가 없는지 기다려봅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죠. 정신줄을 다잡아봅니다. 나는 인턴기자다! 어서 들어 가즈아~~!!!
빈 의자에 앉아 70대 어르신에게 "많이 더우시죠"라고 말을 건네 봅니다.
"덥지~ 근데 젊을 땐 더운 줄도 모르고 일 열심히 했어~!"
젊은이가 이 시간에 일 안하고 뭐 하냐고 말씀 하시네요. 저 일 하러 온 건데… 어르신이 무언가 착각을 하신 게 분명합니다.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자리 차지하고'쉴 때가 아니야!"
둘러보니 우리 주변만 자리가 비어 있고, 다른 의자들은 어르신들이 만원 지하철처럼 붙어 앉아 계시네요. 어르신들 휴식공간을 방해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서 나가즈아~~!!!
무더위쉼터는
원래 노인 전용?
다음 목적지는 난이도가 더 높은 경로당입니다. 예상대로 문을 여니 12평 남짓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계신 할머니들의 시선이 날아와 꽂히네요. 할머니 한 분이 "어디서 나왔냐"며 경계합니다. 지나가던 청년인데 너무 더워서 잠시 쉬러 왔다고 둘러대 보지만,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분들에겐 이런 거짓말이 통할 리가 없죠. 짧은 취조 끝에 인턴기자라고 실토합니다.
기왕 들킨 거 궁금한 건 대놓고 물어봐야죠.
인턴: "여긴 더울 때 아무나 들어와서 쉴 수 있는 곳인가요?"
노인분들 "무더위쉼터 간판 붙인 뒤로는 지나가는 노인들도 가끔 들러. 그래도 젊은이들은 없지~ 무더위쉼터라는 게 원래 노인들 오라고 만든거여. 기자가 그것도 몰라?"
오자 마자 의심을 받은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신체가 약해 무더위에 취약한 사람들은 젊은이 중에도 있다는 사실. 할머니들께 잘 전달될 수 있을까요?
6곳 중 비상구급함은
'단 한 곳'
10분 거리에 있는 경로당을 한 곳 더 들러 봅니다. 잘 보이는 곳에 생수더미와 비상 구급함이 눈에 들어오네요. 아이스팩, 비상용 산소용기 등 온열환자 응급처치에 필요한 물품이 가득합니다. 다른 무더위쉼터에도 이런 게 있었던 걸까요? 쉼터 6군데 만에 처음 보는 구급함입니다.
근처에는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주민센터도 있지만, 할머니들은 이곳이 편하다는 군요. 여긴 같이 수다 떨고 밥 먹을 친구가 있으니까요. 아침에 문을 열면 저녁 9시까지 한 곳에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 있으니 바다나 계곡이 부럽지 않죠.
경로당 회장님께 회원이 아닌 어르신들도 더위를 피하러 찾아 오냐고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더워도 불편한지 잘 안 와. 얼마전에는 요 옆에 쪽방촌 사는 사람들이 집에서 변을 당했다던데…" 라며 안타까워 하시네요.
쪽방 주민 없는
쪽방촌 무더위쉼터
어르신들이 잘 찾지 않는다던 주민센터로 가봅니다. 국민재난포털을 보면 이곳은 24시간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는 곳이네요. 즉 쉼터에서 잠도 잘 수 있다는 말이죠. 근처에 쪽방촌이 있어 특별히 마련한 듯합니다.
들어가보니 24시간 쉼터라도 같은 공간에서 계속 운영하는 게 아니군요! 주간(오전 9시~오후 6시, 특보 발령 시 오후 9시까지 연장)은 5층 도서관에서, 야간(오후 9시~다음날 오전 7시)에는 4층 악기연습실에서 운영한답니다.
24시간 쉼터지만 오전 2시간 정도 운영 공백은 있네요. 야간에 운영하는 공간은 남녀 공간이 나눠져 있고, 한쪽 벽이 모두 거울로 된 텅 빈 방입니다. 크기만 보면 40명은 거뜬히 자겠는데요?
담당공무원이 생수, 이불 등 야간 무더위쉼터 운영에 쓸 물품들을 꺼내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야간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하네요. 쪽방촌 사람들은 무더위쉼터에 왜 오지 않는 걸까요?
담당자는 "야간 운영한 지 일주일밖에 안돼 홍보가 덜 된 것도 있고, TV도 없는 적적한 공간이라 오길 꺼려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5층 도서관은 책이라도 있었는데, 4층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밖에 없더라구요.
무더위쉼터,
진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세요!
인턴기자가 본 무더위쉼터 문제점은 크게 5가지입니다.
1. 무더위쉼터는 찾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못 쓰는 사람들, 특히 검색에 익숙치 않은 고령층은 쉼터 위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길거리에 화장실 이정표는 많지만 무더위쉼터 이정표는 한 군데도 없으니까요. 찾기 어렵고, 찾아도 들어갈 수 없다면 쉼터가 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관계 기관의 홍보가 절실합니다. 찾아가기 쉽도록 길 곳곳에 무더위쉼터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DJ래빗 전국 무더위쉼터 지도 바로가기
2. 무더위쉼터는 멉니다!
쉼터 위치도 문젭니다. 경로당 같은 쉼터는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이 아닌, 구불구불 골목길에 숨어 있거든요. 저희가 찾은 곳 중에는 무더위쉼터 지정 전에 담당자가 이 곳을 직접 와봤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외진 곳도 있었습니다.
지정하기 쉬운 곳이 아닌, 필요한 사람들이 실제로 찾아가기 편한 곳을 조사해 재지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중심 종로를 20분 걸어도 무더위쉼터를 찾을 수 없었던 건, 아직 쉼터 수가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경로당 같은 노인복지시설 뿐 아니라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 활용, 민간과의 연계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2016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보고서를 보면 일본은 민간 서점, 상점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두바이는 버스정류장에 냉방시설을 설치하기도 한다고 하네요.
KEI 보고서: 폭염 대비 무더위쉼터의 실효성 제고 방안
3. 무더위쉼터는 불편합니다!
쉼터인데 편하게 쉴 수 없었습니다. 쉼터 안내문 옆에 '업무 외 출입 자제'가 써 있던 은행은, 들어가더라도 고객 대기좌석 말고는 앉아 있을 공간이 없었습니다. 또 젊은 세대는 위치를 찾아도 경로당이나 노인복지센터라면 들어가지 않겠죠. 쪽방촌 인근에 마련한 주민센터 야간 쉼터는 전입신고 안 한 쪽방촌 주민들이 이용을 꺼린다는 모순도 보였습니다.
4. 운영지침을 모릅니다!
쉼터 운영지침을 더 명확하고 세세하게 정하면 어떨까요? 업무공간과 분리된 쉼터 설치, 응급물품 구비, 좌석 수 같은 기준 말이죠. 또 무더위쉼터는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홍보가 절실합니다. 지자체는 경로당 입구에 무더위 쉼터 마크를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의 취지를 어르신들이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2015년 무더위쉼터 지정, 운영 관리 지침
5. 취약층 맞춤 대책 절실!
쪽방촌 주민, 노숙자, 무직자 등 폭염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일부 지자체는 폭염 때 사회보건인력, 공무원, 통반장 등 '재난 도우미'들이 취약계층에 전화나 방문을 한다고 하네요.
이런 복지 시스템이 전국 단위로 정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재난 도우미도 늘리면 어떨까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더위 때문에 쓰러지도록 그냥 내버려 둬선 안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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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국 무더위쉼터 찾기: https://bit.ly/2A5IJR9
[2] 폭염 시 행동 요령: https://bit.ly/2A6ZpYC
[3] 기상정보 확인: https://bit.ly/2IQG3di
[4] 서울시 무더위쉼터, 의료기관 정보: http://bit.ly/2xaDH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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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창우, 박진홍 인턴기자 m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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