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업계가 '진정한 실사용' 이뤄내야"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세는 침체기지만 산업에 뛰어드는 인력들, 더군다나 뛰어난 경력의 인재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서울에서 한경닷컴과 만난 암호화폐(크립토) 펀드 빗샤인 그룹의 케빈 영 창립멤버(사진)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몰리는 것 자체를 블록체인 산업의 긍정적 신호로 해석했다.
“저는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인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업계에 유입되는 인재의 질과 양을 보죠. 그런 관점에선 산업의 전망이 밝습니다. 현대 금융시장에서 블록체인 만한 큰 기회는 없다는 방증이거든요.”
그는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을 나와 홍콩 모건스탠리 투자은행에서 기업공개(IPO) 관련 일을 했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1년간 셰프로 활동하기도 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스스로 휴식기라 표현했다. 실제로 그는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셰프 일을 한 뒤 상하이로 돌아와 중국의 대형 언론사 ‘포커스 미디어’ 산하 펀드의 밴처캐피털리스트(VC)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알리바바로 알려진 토코피디아, 중국 인터넷은행 위뱅크, 초대형 데이팅 앱 탄탄 등 주로 TMT(방송·정보·통신) 분야 기업들이 그가 초기 투자로 참여한 곳들이다.
기존 금융산업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그는 지난해 돌연 크립토 펀드 빗샤인 그룹 설립에 참여했다. 빗샤인 그룹은 글로벌 1위 거래소 바이낸스와 중국 최초의 크립토 펀드인 펜부시 캐피탈 등과 파트너십을 맺을 만큼 탄탄한 곳.
갑자기 셰프가 되었던 것처럼 관심과 흥미가 있는 분야라면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몰입하는 성격인 듯했다.
-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빗샤인 그룹 설립 멤버이자 파트너로서 블록체인 관련 자문과 인큐베이션을 하고 있어요. 우리 멤버들은 사모펀드운용사(PE), VC, 투자은행(IB) 출신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죠. 저는 기존 지식과 경험들을 활용해 프로젝트를 분석하고 투자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기업들이 비즈니스에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자문도 해줍니다. 전략을 세우고 새로운 토큰 이코노미를 설계하거나 파트너사를 찾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어요.”
- 암호화폐 산업에 들어온 계기가 궁금하다.
“2014년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 친구가 두 시간 내내 비트코인에 대해 열변을 토하더군요. ‘블록’, ‘해시’ 같은 용어를 쏟아내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죠. 한 달쯤 뒤 그 친구와 통화하는데 비트코인 샀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아니라고 답했더니 화를 냈습니다. 이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면서. 결국 친구의 설득대로 비트코인을 샀어요. 지금은 그 친구가 화를 낸 것에 감사하고 있죠(웃음).”
- 그때까지만 해도 암호화폐 개념을 전혀 몰랐군요.
“그렇죠. 그 친구는 지금 암호화폐 거래소를 소유하고 있는데요. 친구의 도움으로 비트코인을 알게 됐고, 운 좋게 수익까지 냈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어요. 작년부터는 전통 미디어들도 암호화폐를 다루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면서 제대로 된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수락해 빗샤인 그룹 설립 멤버가 되었습니다.”
- 전통적 금융 산업과 블록체인 산업은 어떻게 다른가.
“여태까지는 유저나 개발자들이 생태계에 기여했다고 해서 혜택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잖아요. 생각해보세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비즈니스는 유저들의 참여로 굴러가죠. 엄연한 스테이크홀더(이해당사자)지만 SNS 비즈니스의 가치 창출을 도운 유저들은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블록체인은 그렇지 않아요. 유저와 개발자를 비롯한 모든 생태계 참여자들은 암호화폐로 보상 받게끔 설계됐으니까요.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면 전통 금융 산업 종사자들은 왜 블록체인 산업으로 넘어오는지.
“우선 금융 산업 종사 경험 자체가 큰 무기가 됩니다. 모건스탠리에서 일할 때 어떻게 큰 기관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지, 시장의 움직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등을 많이 배웠습니다. 블록체인 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죠. 또 ‘기회’가 많아요. 블록체인 산업은 기존 산업에 비하면 아주 초기 단계의 시장이거든요. 비즈니스 모델이든 시장이든 완벽히 갖춰져 있지 않죠. 그래서 블록체인 분야에서는 오히려 스스로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 발전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라 매력적이다?
“게다가 ‘뜨는 산업’이기도 하잖아요. 암호화폐 시세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인적 자원과 에너지에 대해 말하는 거죠. 저는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가 되었느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그보다는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오는 인재의 양과 질을 보죠. 해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 참여하는 인원이 늘고 능력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긍정적 신호예요. 현대 금융 시장에서 블록체인 만한 큰 기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블록체인 업계에 종사하면서 필요한 덕목은 뭐라고 보나?
“전문성이나 능력을 떠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특히 ‘열린 사고(오픈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해요. 기존 산업에서 실현 불가능했던 수많은 비즈니스가 블록체인에서는 가능해지니까요. 새로운 기술과 시장에 대한 열린 시각 없이는 블록체인 시장에서 혁신하기는 힘들 겁니다.”
- 블록체인 업계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블록체인의 ‘진정한 실사용’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제 서비스나 회계, 게임, 거래 등 수많은 ‘잠재적 사용처’들이 존재하긴 합니다. 하지만 실사용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겠죠. 기술적인 문제점, 규제 이슈, 변동성 큰 시장 등의 요인 때문에 안정된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기 어렵기도 하고요. 결국 대중에게 블록체인이 실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산업이 확고히 자리잡을 거라 생각합니다. 업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김산하 한경닷컴 객원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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